[루키] 이승기 기자 = 밥상을 기껏 잘 차려놓고, 스스로 밥상을 엎었다.

20일(한국시간) 휴스턴 토요타 센터에서 열린 2017 NBA 플레이오프 1라운드 2차전 맞대결에서 오클라호마시티 썬더가 휴스턴 로케츠에 111-115로 패했다.

오클라호마시티는 다 잡은 경기를 놓쳤다. 빌리 도너번 감독의 패착 때문이었다.

경기 첫 34분 동안, 썬더는 로케츠를 압도했다. 골밑을 완벽하게 장악하면서 원래의 장점이 살아났다. 러셀 웨스트브룩(최종 51점 10리바운드 13어시스트 4스틸)은 이때까지 36점 9리바운드 11어시스트 3스틸 FG 52.0%(13/25)를 기록하며 신들린 퍼포먼스를 펼쳤다.

도너번 감독은 1차전 패배 후, 휴스턴의 픽앤롤을 막기 위해 많은 준비를 했다. 이날 에네스 칸터(8분)의 출장시간을 줄인 것은 그 때문이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오클라호마시티는 휴스턴의 픽앤롤을 효과적으로 수비해냈고, 덕분에 줄곧 우위를 지켰다.

3쿼터 종료 2분 20초 전, 오클라호마시티는 86-74 리드를 잡았다. 보다 못한 휴스턴의 마이크 댄토니 감독이 작전시간을 요청했다. 이에 도너번 감독은 '공격의 핵' 웨스트브룩과 '수비의 핵' 타지 깁슨을 모두 벤치로 불러들였다. 휴식을 주기 위해서였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이때 썬더가 내보낸 라인업이 너무나도 기형적이었다. 이런 엽기적인 스몰라인업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 3쿼터 마지막 2분을 마무리한 오클라호마시티의 라인업

제레미 그랜트 - 안드레 로벌슨 - 카일 싱글러 - 빅터 올라디포 - 세마지 크리스턴

자,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저 라인업을 슬쩍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답답할 것이다. 결과는? 안 봐도 비디오다. 시원하게 망했다.

로케츠는 이 형편없는 라인업의 허점을 노려 3쿼터 막판 2분 동안 순식간에 12점을 몰아쳤다. 그 사이 썬더는 고작 3점에 그치며 자멸했다. 휴스턴이 수비를 잘한 게 아니다. 스스로 아무것도 못해서 무너졌다.

스몰포워드인 제레미 그랜트가 센터 역할을 했다. 아무리 간혹 파워포워드를 소화한다고는 하지만 이건 좀 심했다. 스윙맨인 안드레 로벌슨은 파워포워드가 됐다.

빅터 올라디포는 이번 시리즈 내내 형편없는 경기력으로 일관하고 있다. 나머지 선수들은 스스로 공격을 창출할 수 있는 능력이 전무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 라인업은 등장과 동시에 멸망하고 말았다. 의미없이 바깥에서 공을 돌리다 슛을 난사할 뿐, 뭔가를 해결할 수 있는 선수가 한 명도 없었다. 수비는 물론, 공격조차 전혀 안 됐다.

이 라인업 때문에 12점 차 리드가 순식간에 3점 차로 줄어들었다. 승부는 사실상 원점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당황한 도너번 감독은 4쿼터 시작과 동시에 웨스트브룩을 곧바로 투입했다. 원래의 로테이션이라면 4쿼터 첫 5분 가량을 쉬고 나와야 했다. 1차전에서도 그랬다. 하지만 팀이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고, 웨스트브룩은 쉴 수 없게 됐다.

웨스트브룩도 사람이었다. 4쿼터를 풀타임으로 소화하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4쿼터 중반 이후 던진 대부분의 슛이 짧았다. 웨스트브룩은 4쿼터에 무려 18개의 슛을 던져 14개나 놓쳤다. 심지어 동료들마저 12개의 야투 중 9개를 실패하는 등 부진하면서, 오클라호마시티는 막판 통한의 역전패를 당하고 말았다.

결국 이 모든 사태는 도너번 감독의 책임이다. 3쿼터 막판 공수 아무것도 안 되는 기괴한 스몰라인업을 들고 나오는 바람에 완전히 꼬였다. 다 잡은 대어를 놓쳤다.

차라리 올라디포를 볼 핸들러로 쓰고, 덕 맥더밋과 알렉스 아브리네스를 양쪽 코너맨으로 썼다면 어땠을까. 또, 에네스 칸터나 도만타스 사보니스 등 빅맨을 한 명이라도 기용했다면 어땠을까. 수비는 여전히 암울했겠지만 적어도 공격에서는 실마리가 보였을 것이다.

이날 도너번 감독은 1차전에 안 된 부분을 훌륭하게 보완해서 나왔다. 인사이드 우위를 점했고, 픽앤롤 수비도 잘 됐다. 과연 전략 수정의 귀재다웠다. 하지만 3쿼터 막판 2분간 보여준 해괴망측한 스몰볼로 인해, 잘 차린 밥상을 스스로 걷어차고 말았다.

한편, 썬더는 시리즈 전적 0승 2패를 기록하며 불리한 입장이 됐다. 오클라호마시티와 휴스턴의 3차전은 22일 오클라호마시티로 장소를 옮겨 펼쳐진다.

사진 제공 = Gettyimages/이매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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