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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에이스, 그 이상’이었던 변연하의 귀환

기사승인 2019.10.17  05: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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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에세이 ‘단편’(斷片/短篇)   
| 미국 연수 마치고 돌아온 '변코비'
|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농구인생 2막

[루키=박진호 기자]

변연하는 어느 정도는 건방지고 도도해야 한다. 꼿꼿해야 한다. 그리고 별로 기다리고 싶지는 않지만, 결국은 오게 될 그녀의 은퇴식 때도 그렇게 "나, 변연하"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웃어주길 기대한다. 그러한 도도함이 바로 팬들을 열광시켰던 슈퍼스타 변연하의 가치를 만들었던 자존심의 밑바탕이었으니까….

2014년 8월, 농구 전문지 <점프볼>에 기고한 글에서, 나는 변연하에 대해 이렇게 마무리를 했다. 그러나 막상 그의 마지막은 팬들에게 ‘준비 없는 이별‘과도 같았다. 

2016년 3월 13일. KB는 부천실내체육관에서 열린 KDB생명 2015-16 여자프로농구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KEB하나은행에 1점차로 패해 시즌을 마쳤다. 하지만, 이 경기가 변연하의 현역 마지막 경기가 되리라는 것을 예상한 이는 많지 않았다. 

3점슛 5개 포함, 25점(9리바운드 6어시스트)을 쏟아 부으며 양 팀 통틀어 최다 득점을 기록했던 변연하는 이 시즌을 마치고 은퇴를 선언했다.  

WKBL 역대 최연소 MVP(20세 11개월), WKBL 역대 최다 3점슛(1014개), 국내 선수 WKBL 한 경기 최다득점(46개) 등 화려한 기록의 주인공 변연하는 ‘변코비’, ‘수퍼 에이스’라는 별명을 추억으로 남긴 채, 그해 10월 30일 KB의 2016-17시즌 홈 개막전에서 은퇴식을 가졌고, 팬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렇게 3년. 아무렇지 않게 은퇴를 선택해서 불현 듯 사라졌던 그가 아무렇지 않게 다시 눈 앞에 나타났다.

“내가 미국에 연수 다녀온 건 다 알잖아? 스탠퍼드 대학에서 2년 동안 지도자 연수 받았고, 이모가 계신 애리조나로 가서 영어 연수를 받고... 그렇게 있다가 왔어요.”

미국의 다른 점? 열심히 한다!
어려서부터 미국 농구를 직접 경험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농구의 종주국‘이라 할 수 있는 미국에서 선진 농구를 보고 싶다는 것은 선수 때부터 가졌던 생각이라는 것. 그래서 은퇴 후의 진로를 고민할 때, 자연스럽게 우선순위로 떠오른 것이 미국 연수였다. 

“열심히 해요. 정말 열심히 해... ‘내가 저 나이로 돌아가면 저렇게 열심히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봤는데 자신이 없더라고. 진짜 그 정도로 열심히 해요.”

변연하를 지도했던 감독들은 그를 회상할 때, 출중한 실력과 더불어 성실한 훈련 태도에 높은 점수를 줬다. 그의 현역 시절 마지막을 함께한 서동철 KT 감독(당시 KB 감독)은 물론, 대표팀에서 변연하를 지도했던 위성우 우리은행 감독도 변연하의 훈련 태도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변연하의 허리 부상이 큰 이슈가 된 적이 있다. 일부 선수들이 국가대표 경기를 뛰지 않으려고 엄살을 부리는 것이 아니냐는 논란도 있었지만, 대표팀을 이끌던 위성우 감독은 “변연하가 아프다고 하면 그건 진짜 아픈 것”이라고 일축했다. 그만큼 지도자들은 변연하에 대해 실력 뿐 아니라, 자기 관리, 그리고 성실성 면에서 ‘악바리’라며, ‘최고’라고 입을 모았다.

그런데 그랬던 변연하가 미국의 대학 선수들을 보며 가장 크게 느낀 점이 “열심히 하는 것”이었다며, 여기에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미국 선수들과 한국 선수들의 가장 큰 차이점 역시 이 부분이라고 말했다.

“공식적으로 스탠퍼드(대학)는 하루 한 타임만 훈련해요. 그런데 감독님이 그것만 갖고는 안 된다고 느낀 거지. 그래서 아침에 웨이트 트레이닝을 먼저 하고 수업을 갔다 와서 훈련을 하기도 하고, 오전 수업을 듣는 학생이 있어서 이른 시간에 운동을 못하면, 오후 훈련 후에 잠깐 쉬었다가 야간에 또 해요. 당연히 공부도 하고 과제도 하고... 난 걔들 보면서 ‘잠은 언제 자나’하는 생각도 자주 했어요.”

열심히 하는 것 외에, 농구를 대하는 선수들의 자세도 언급했다. 대학을 졸업한 후, 프로에 진출하는 선수도, 그렇지 않은 선수도 있지만, 이미 대학을 거치며 프로 무대에 어울리는 마인드를 갖춰간다는 것.

“수업 듣고, 공부하고, 운동까지 다 하려면 피곤하지. 얼굴에 피곤하다고 쓰여 있어. 그런데 코트에만 들어가면 달라져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운동에 집중하고, 정말 열심히 해요. 시합 때도 그래. 승부가 다 결정된 경기 막판에 교체를 지시해도, 벤치에서 선수들이 달려 나가요. 솔직히 그런 시간에 집어넣으면 별로 의욕이 안 생길 텐데, 이 선수들은 그렇지가 않더라고. 경기 중에 상대 선수랑 부딪히거나 넘어졌을 때 감독이 교체하려고 하면 오히려 선수가 화를 내요. 뛸 수 있다는 거지. 교체하지 말라고 해요.”

그는 국내 프로 구단들이 미국 대학팀과 정기적으로 교류를 하는 것도 선수들의 성장에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했다. 

WKBL 구단들은 일본 WJBL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변연하는 “일본이나 대만, 중국이랑 정기적으로 교류를 하는 것도 물론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선수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프로에 들어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어린 나이에 소위 ‘프로 마인드’를 갖추는 게 쉽지 않다. 하지만 미국 대학 선수들의 생활과 운동하는 분위기 등을 직접 경험한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만약 내가 현역 때, 미국 대학 선수들이 이렇게 운동을 하고 있다는 걸 봤다면, 정말 좋았을 것 같아. 진짜 도움이 많이 됐을 거에요. 이런 건, 옆에서 아무리 말해줘도 효과가 없거든. 직접 보고 느껴야 해요.”

‘한국 농구의 병폐’ 가혹한 훈련?
그렇다면, ‘훈련이 너무 많아서 오히려 선수를 망가뜨리고 발전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된 한국 농구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이러한 비판에는 외국, 특히 ‘미국은 한국처럼 농구하지 않는다‘는 설명이 항상 함께 한다.

“사실 외국인 선수들이 우리나라 오면, 훈련이 많다는 얘기를 자주 하거든요. 그런데 솔직히 묻고 싶어. 너 대학 때도 그렇게 했냐고...”

물론 프로와 대학은 엄연히 차이가 있다. 미국과 한국은 팀 훈련과 개인 훈련의 비중 역시 다르다. 변연하 역시 그 부분을 인정했지만, 그렇다고 모든 훈련 시스템이 미국처럼 진행되어야 한다는 부분은 동의하지 않았다.

“미국처럼 훈련하면 미국 선수처럼 할 수 있어요? 타고난 신체 조건이 다른데, 어떻게 똑같이 훈련을 해요? 상황이나 조건에 따라 다르게 가져가야지. 국제대회를 나가보면 일본, 중국 선수들이랑 몸싸움 하는 거랑, 유럽이나 흑인 선수들이랑 하는 거는 완전히 달라요. 새로운 것들은 배우고, 효과가 좋은 것들을 접목해야죠. 그런데, 흑인 선수들이 하는 프로그램과 강도를 똑같이 가져오면, 훈련이 제대로 될까요? 감독 성향도 마찬가지에요. 스탠퍼드 감독님도 엄청 강성이에요. 불 같이 화내세요. 나이도 꽤 있으신데, 정말 방방 뛰셔. 돌려 말하는 거 없이 직설적으로 얘기 하시고, 그러다가 심한 말이 나올 거 같으면 선수를 그냥 빼 버려요. 우리나라에서 다혈질이라는 얘기 듣는 감독님들이랑 다르지 않아요.”

스텐퍼드 대학 여자농구팀의 감독은 타라 밴더비어(Tara VanDerveer). 1953년 생이며 애틀랜타 올림픽에 미국 대표팀 감독으로 팀을 이끌어 금메달을 획득했다. 1985년부터 35년째 스탠퍼드 대학의 여자 농구 감독으로 재임 중이며, 2002년에는 ‘여자농구 명예의 전당’에, 2011년에는 ‘네이스미스 농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체력이 없으면, 기술도 없다
변연하는 산악 훈련으로 대표되는 체력 훈련 문제에 대해서도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선수 시절, 전매특허 같았던 스텝백 3점슛을 비롯해 다양한 공격 기술을 자랑했던 변연하는 자신의 기술에 대해 “남들보다 체력에 자신이 있어서 그렇게 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도 체력이 없으면 쓸 수 없어요. 우리나라 프로팀들의 비시즌 체력 훈련은 보통 길어야 2주 정도잖아요? 산악훈련 같은 것도 그래. 올라갈 때만 뛰고, 내려올 때는 차타고 내려 오잖아요. 오전에 뛰면, 오후에는 코트 훈련하고, 슛 연습하고... 팀마다 다르겠지만 큰 차이는 없지 않나? 태백에 가면, 2주 내내 등산만 한다고 잘못 알고 있는 거 아니에요? 미국 선수들도 체력 훈련 엄청나게 해요. 뛰기도 많이 뛰고... 프로 선수들은 개인 트레이너도 고용하고요.”

변화와 개선이 필요한 부분은 분명 존재한다. 점차 나은 방향으로 발전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기존의 힘든 훈련은 무조건 나쁘고 잘못됐으며, 그 근거로 “미국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는 “사실과 다르다”고 못 박았다. 

갑작스러웠던 ‘선수 변연하’의 마지막
다시 초점을 ‘선수 변연하’로 돌려보자. 

변연하의 은퇴에 대해서는 항상 ‘아쉬움’이라는 단어가 동행한다. 은퇴 당시 36세였던만큼 적은 나이는 아니었지만 충분히 더 뛸 수 있지 않았냐는 것. 앞서 언급했지만, 변연하는 자신의 현역 마지막 경기에서도 25점을 득점했다. 

당시 KB를 꺾고 챔피언 결정전에 올랐던 하나은행의 박종천 감독은 변연하에 대해 “무슨 방법을 써도 못 막겠더라. 그냥 내가 코트에 난입해서 변연하의 발목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했다. 또한 “그 나이에 정말 대단하다. 앞으로 5년은 더 저렇게 뛸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경기가 변연하의 마지막이었다.

“계속 선수 생활을 이어가다가 뜻하지 않은 부상 때문에 제 기량을 못 보여주고 은퇴했던 언니들을 많이 봤어요. ‘차라리 몸 좋을 때 그만둘 걸’이라며 후회도 많이 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나도 은퇴 시점에 대해 준비를 늘 하고 있었어요.”

변연하는 “서동철 감독님이 계속 계셨으면 선수 생활을 더 했을지도 모른다”고 회상했다. 감독 교체에 대한 반발이 아니다. 서동철 감독의 재계약이 불발되며 팀이 대대적인 변화를 가져가는 상황이 되자, 스스로 은퇴를 하기에 적기라는 판단을 했다는 것이다.

“솔직히 선수 생활만 놓고 따지면 미련이랄게 없어요. 안 해본 거 없고, 누릴 것도 다 누리고, 팬들의 사랑도 많이 받으면서 잘 마친 거 같아요. 하지만, KB에서 우승을 못한 건 아쉬워요. 난 마지막 시즌에도 우리가 올라가면 우승할 거라고 믿었거든. 아마 내가 준우승을 제일 많이 한 선수 아닐까요?”

변연하가 2016년에 은퇴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박지수와 함께 뛸 수 있었다. KB팬들은 박지수와 함께 뛰는 변연하를 보지 못한 것이 무척이나 아쉽다. 그랬다면 KB의 창단 후 첫 우승과 박지수의 성장이 지금보다 더 빨랐을 것이라는 예상도 상당하다. 

“(박)지수가 KB 올 줄 알았나? 알았으면 은퇴 안 했죠!”

변연하도 박지수와 함께 하지 못한 부분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 하지만 우승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박지수의 데뷔 시즌에 33승 2패라는 압도적인 성적으로 우리은행의 최고 전성기를 이끌었던 위성우 감독도 “(변)연하랑 지수가 같이 뛰었으면, 우리가 우승 못했을 것”이라고 했지만, 변연하의 생각은 달랐다.

“지수가 온 첫 시즌에는 팀 성적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잖아? 어쨌든 프로에 적응하고, 발전하고, 뭔가를 보여주려면 맞춰가는 과정이 중요하고, 시간이 필요해요. 내가 지수랑 같이 뛰었으면 바로 우승했을 거다? 에이... 그건 진짜 아니라고 봐요.”

기록은 항상 깨지는 것... 그러나...
지난 시즌, KB는 그렇게도 꿈에 그렸던 창단 후 첫 우승을 달성했다. 변연하는 선수로서는 끝내 KB의 V1을 달성하지 못했지만, 청주체육관에 영구결번으로 남은 ‘10번 변연하’의 이름은 그 우승을 함께했다. 

“우승 할 때가 됐죠. 여러모로 봐서 그럴 때가 됐고... 워낙 좋은 선수들도 있고... 사실 (심)성영이하고 (김)민정이한테 ‘내가 우승은 못했지만, 그래도 KB 우승 시키려고 정말 많이 노력한 사람인데, 챔피언 반지는 줘도 되는 거 아니냐’고 농담도 했어요. 그 만큼 KB에 마음이 있을 수밖에 없죠. 그냥 애들한테 챔피언 반지 구경시켜달라고 했어요. 한국에 왔으니, 반지도 볼 겸 청주에 가봐야겠어. 솔직히 청주체육관에 내 이름이 걸려있는 걸 은퇴하고는 본 적이 없거든요. 경기장에서 그걸 보면, 왠지 마음이 또 새로울 거 같아.”

KB의 우승과 함께 변연하가 은퇴할 때까지 갖고 있던 기록 하나가 사라졌다. WKBL 최연소 MVP의 주인공이 변연하에서 박지수로 바뀐 것. 

“기록이야 항상 깨지는 거지. 나도 다른 선수 기록을 깨 본 입장에서 아쉽고 할 게 뭐 있어요? 기록의 주인공이 바뀌어야 농구도 계속 발전하는 거죠. 지수가 최연소 MVP를 받으니까 그 전에는 내가 갖고 있던 기록이라면서, 내 이름도 다시 언급되던데? 기록이 안 깨졌으면 남들이 기억도 못했을 거 아냐?”

변연하는 박지수가 대단한 선수라는 걸 알고 있지만 제대로 뛰는 걸 유심히 살펴볼 기회는 지금까지 없었다며, “올 시즌에 많은 기대를 갖고 본격적으로 집중해서 볼 것”이라고 말했다.

“WNBA가 아무나 갈 수 있는 데가 아니잖아요. 내 돈 내고 가서 뛰겠다고 해도 못 가는 곳인데, 드래프트에서 뽑히고, 트레이닝 캠프에서도 인정받아서 WNBA선수로 뛰었잖아? 출전시간이나 활약을 놓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들었는데, 나는 솔직히 이해가 안돼요. 같이 경쟁하고 있는 선수들, 코트에서 함께 뛰는 선수들이 모두 세계 최고의 선수들인데... 미국에서도 경쟁이랑 차별이 엄청 심한데, 그걸 극복하면서 뛰고 있는 거잖아요. 거기서 뛸 수 있는 자격을 인정받았으니까, 더 열심히 하고 성장해서 더 좋은 선수가 됐으면 좋겠어요.”

한편, 변연하는 최연소 MVP에 이어 통산 최다 3점슛 기록도 언젠가는 다른 선수의 차지가 될 거라고 예상했다.

“강이슬(하나은행)이 깨지 않을까? 슛 감각은 타고나야 하는데 확실히 그런 부분이 있고, 또 ‘림도 안 보고 슛을 던지는 거 같다’는 말이 나올 만큼 슛 타이밍이 빠르잖아. 지금 25살이니까 10년은 더 할 거 아냐? 충분히 내 기록을 넘어설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강이슬이 새 기록을 세울 때, 내 이름이 한 번 더 나오겠지 뭐.

하지만 국내 선수 한 경기 최다득점 기록은 유지됐으면 좋겠다고. 

변연하는 삼성생명 시절이었던 2008년 1월 10일, 용인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우리은행과의 2007-08시즌 경기에서 46점을 득점했다. 3점슛 8개를 포함해 자유투로만 12점을 추가한 변연하의 한 경기 46득점은 WKBL 국내 선수 한 경기 최다 득점 기록이다. 이날 변연하의 야투율은 3점슛 66.7%, 2점슛 71.4%, 자유투 92.3%. 삼성생명은 69-63으로 승리했다.

“아니, 이전 기록 보유자로 두 번이나 이름 나왔으면 됐지, 굳이 세 번까지 언급될 필요는 없잖아. 그래도 기록 하나는 갖고 가자. 이 기록은 그냥 안 깨졌으면 좋겠어요.”

해설자, 칼럼니스트로 여는 농구인생 2막
3년 간의 미국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변연하는 이번 시즌 부산 MBC에서 WKBL 해설을 맡았다. 또한 <루키 더 바스켓>에 WKBL은 물론 KBL에 대해서도 칼럼을 기고한다. 이미 비시즌부터 KT의 연습 경기를 몇 차례 지켜봤던 변연하는 지난 주말, BNK의 연습 경기를 본 후, 사직체육관으로 이동해 KT의 홈경기도 확인했다. 

“내 생각을 농구팬들에게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지 부담도 되고, 해설 못한다고 욕 먹을까봐 걱정도 돼요. 일단, 해설은 부산에 방송되는 경기인 만큼, 편파는 아니더라도 BNK에 무게를 두고 중계할 생각이에요. 사실 BNK가 KB랑 경기를 하게 되면, 해설할 때 곤란할 거 같긴 했거든. 내가 제일 잘 아는 선수들이 KB에 있으니까 설명을 해도 ‘KB쪽 얘기를 더 하게 되지 않을까’ 했는데... 그런데 중계 일정 중에 KB 경기가 없더라고. 다행이지 뭐.”

해설 위원이 애초의 목표는 아니었다.

“연수 잘 마치고 한국에 들어왔더니 ‘현실의 벽’을 만난 거죠. ‘뭘 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을 하다가, ‘일단 농구 경기라도 많이 보자’는 생각을 했는데, 마침 그때 부산 MBC에서 제의가 왔어요. 자연스럽게 농구장에 다시 가게 된 거죠. 사실 내가 하고 싶다고 해서 다 내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잖아요. 지금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그리고 농구와 관련된 일에서 기회가 닿으면 또 열심히 할 생각이에요.”

변연하는 중계를 하지 않을 때에도 농구장을 자주 찾을 예정이다. 이제 농구팬들은 경기장에서 농구공 대신 펜과 마이크를 잡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코트를 주시하는 변연하를 만나볼 수 있다. 코트 위에서 가장 화려하게 빛났던 ‘변코비’를 다시 볼 수는 없지만, 해설위원과 칼럼니스트라는 이름으로 팬들과는 이전보다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과거 KB의 한 관계자는 “볼을 갖고 상대 코트로 넘어가는 (변)연하의 뒷모습을 보면 그렇게 마음이 든든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어떤 유니폼을 입어도, 같은 색의 옷을 입은 이들을 항상 기대하고 열광하게 만들었던 변연하의 본격적인 농구 인생 2막 역시, 선수 시절 못지않게 찬란하길 응원한다.

사진 = 박진호 기자, 이현수 기자, WKBL-변연하 본인 제공

박진호 기자 ck17@rookie.co.kr

<저작권자 © ROOKIE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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