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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다고 놀리지 마세요' 2000년대 최고의 NBA 신인들

기사승인 2019.05.20  11: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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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키=이승기 기자] 2018-19시즌 NBA ‘신인농사’는 그야말로 초대박이 났다. 신인왕이 유력한 루카 돈치치와 트레이 영 외에도 디안드레 에이튼, 마빈 배글리 3세, 재런 잭슨 주니어, 콜린 섹스턴, 케빈 낙스, 샤키 길저스-알렉산더 등 이미 소속팀의 주축 멤버로 자리를 잡은 신인들이 즐비하다. 2000년대 들어 리그에 큰 임팩트를 남겼던 슈퍼루키들을 소개한다.

*본 기사는 루키더바스켓 5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1999-2000시즌 엘튼 브랜드 & 스티브 프랜시스
신인상 투표 결과 : 총 121표 중 58표 공동수상

* 언더사이즈 빅맨의 신화, 엘튼 브랜드

시카고 불스는 1999년 드래프트 1순위로 엘튼 브랜드를 지명했다. 그는 듀크 대학 소속으로 각종 개인상을 휩쓰는 등 자타공인 대학농구 최고의 빅맨으로 군림했다. 원래 듀크 대학은 얼리 엔트리를 허용하지 않았는데, 브랜드가 2년만 마치고 NBA 드래프트에 도전장을 내밀면서 그 전통을 깨버리기도 했다. 브랜드는 1998년 뉴욕에서 열린 굿윌게임, 1999년 피바 아메리카 선수권 대회에 나가 미국에 금메달을 안기기도 했다. 동년배 사이에서는 이미 최고의 기량을 인정 받고 있었던 엘리트 빅맨이었다.

문제는 NBA 무대에 얼마나 빨리 적응할 수 있느냐였다. 왜냐하면 브랜드는 언더사이즈 빅맨이었기 때문이다. 신체검사 결과 브랜드의 맨발 신장은 6피트 8인치(약 203cm)에 불과했다. (브랜드는 이를 프로필 신장으로 기재했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신발 신장을 프로필로 쓰는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당시는 208cm인 알론조 모닝마저 빅맨 중에 신장이 작은 편이라는 소리를 듣던 시대였으니, 브랜드의 신장에 사람들이 의구심을 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브랜드에게는 말도 안 되는 길이의 윙스팬이 있었다. 7피트 5와 1/2인치(약 227cm)에 달하는 윙스팬 덕분에 수비에 문제가 없었다. 아니, 문제가 없는 수준이 아니라 수비는 매우 잘하는 편이었다. 윙스팬과 스탠딩리치(9피트 2인치, 279.4cm)만 놓고 보면 웬만한 7피트 빅맨 못지않았던 것이다.

덕분인지 프로 무대 적응에 걸리는 시간은 고작 2주 정도면 충분했다. 데뷔 세 번째 경기에서 이미 21점 12리바운드를 찍었고, 데뷔 7번째 경기부터는 굉장히 안정적으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활약은 점점 좋아졌고, 시즌 막판 워싱턴과의 경기에서는 44점 12리바운드 FG 76.2%를, 마지막 경기에서는 32점 11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정규리그를 마쳤다.

루키시즌 평균 기록은 20.1점 10.0리바운드 (공격 리바운드 4.3개) 1.6블록. 키가 작다고? 그런 건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공수 양쪽에서 모두 좋은 활약을 펼칠 수 있음이 증명되었다. 올-루키 퍼스트팀 선정은 너무나도 당연했다. 시카고 팬들은 마이클 조던이 떠난 이후 불스를 구원해줄 구세주가 등장했다며 열광했다.

 

* ‘길거리 황제’에서 ‘스티비 프랜차이즈’로

학창시절 문제아였던 스티브 프랜시스는 퇴학과 전학을 반복하는 바람에 고등학교 졸업반 때까지 제대로 된 정식농구 교육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고교 졸업 후 길거리 농구로 실력을 갈고 닦았고, 지역내 최강자로 명성을 떨치게 됐다.

프랜시스의 엄청난 실력은 입소문을 탔고, 그의 재능을 알아본 지역 대학농구 관계자에 의해 프랜시스는 전문대학에 입학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샌 재신토, 알레거니 전문대에서 각각 1년씩 보내면서 NJCAA(전미전문대학체육협회) 리그를 완전히 초토화시켜버렸다.

결국 NCAA 1부리그 메릴랜드 대학의 개리 윌리엄스 감독이 프랜시스에게 손을 내밀었다. 프랜시스는 농구 장학금을 받으면서 메릴랜드 대학에서 1년을 보냈고, 이 1년 동안 전미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발돋움했다. 상식을 파괴하는 운동능력, 길거리 농구로 다진 환상적인 드리블 실력 앞에 수비수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프랜시스는 엘튼 브랜드와 함께 1999 드래프트 Top 2 유망주로 평가 받았다. 결국 빅맨이었던 브랜드가 1순위를 차지했고, 프랜시스는 2순위로 밴쿠버 그리즐리스(現 멤피스)에 지명되었다. 그러나 프랜시스는 밴쿠버 합류를 거부하며 트레이드를 요청해 관계자 및 팬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프랜시스의 아버지는 프랜시스가 2살 때 가족을 버렸다. 그래서 프랜시스는 한 번도 아버지를 본 기억이 적이 없다. 어머니는 그가 고등학교 때 세상을 떠났다. 이후 할머니와 둘이 살았다. 그런데 캐나다 밴쿠버에서 뛰게 되면 고향 메릴랜드에 있는 할머니와 멀리 떨어지게 되기 때문에 밴쿠버로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사람들의 생각은 달랐다. 밴쿠버에는 이미 마이크 비비라는 뛰어난 동포지션 스타가 있었고, 밴쿠버가 최약체이기 때문에 프랜시스가 합류를 거부하고 있다고 여겼다. 밴쿠버와의 계약을 한사코 거부하는 프랜시스의 태도는 팬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샀다. 결국 프랜시스는 휴스턴으로 트레이드 되었다. 

이러한 일화로 인해 팬들의 눈 밖에 난 프랜시스였지만, 그가 사람들의 마음을 다시 사로잡기까지는 다섯 경기면 충분했다. 프랜시스는 휴스턴 유니폼을 입고 뛴 다섯 번째 경기에서 26점 10리바운드 5어시스트 4스틸을 기록하며 폭발적인 활약을 했다. 이후 신인왕에 걸맞은 엄청난 활약을 펼치며 팬들의 눈을 호강시켰다. 팬들은 “키 큰 앨런 아이버슨이 나타났다”며 환호했다.

신인 시즌 평균 기록은 18.0점 5.3리바운드 6.6어시스트였고, 올-루키 퍼스트팀에 선정되었다. 또, 엘튼 브랜드와 함께 공동으로 신인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이후 프랜시스는 휴스턴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발돋움했고, 그의 이름과 발음이 비슷한 ‘스티비 프랜차이즈(Stevie Franchise)’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2003-04시즌 르브론 제임스 & 카멜로 앤써니

* ‘매직 & 조던’의 퓨전, 르브론 제임스

2002년 11월의 일이다. 세인트 빈센트-세인트 메리 고등학교의 경기를 보기 위해 무려 6천여 명의 관중이 몰렸다. 고교농구에 이런 구름관중이 몰리는 것은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다. 뿐만 아니라 그해 12월 ESPN은 사상 최초로 고등학교 농구경기를 생중계하기까지 했다. ‘The Chosen One(선택받은 자)’이라고 불리는 한 소년 때문이었다. 

당시 이 ‘농구천재’에 대한 주목도와 기대감은 가히 역사상 최고 최대였다. 언론에서는 ‘마이클 조던의 득점력, 매직 존슨의 패싱력, 코비 브라이언트의 개인기를 모두 갖춘 선수’라고 대서특필했다. NBA 최고 슈퍼스타인 코비 브라이언트와 샤킬 오닐이 이 선수의 경기를 직접 관람하러 오는가 하면, 이탈리아의 한 프로농구단은 이 소년에게 연봉 800만 달러를 주겠다며 영입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나이키와 아디다스, 리복 등은 이 선수와 계약하기 위해 수백만 달러를 준비해두고 있었다. 그 고등학생의 이름은 르브론 제임스였다.

르브론은 대학교에 진학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고등학교만 진학하고 만 18세의 나이로 성인무대에 도전했다. 1순위 지명권을 들고 있던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가 그의 이름을 호명했다. 사람들은 과연 르브론이 얼마나 빨리 리그에 적응할 수 있을지 궁금해했다. 그간의 사례를 보면, 고교 출신 선수들은 NBA 무대에 적응하기까지 보통 2~3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곤 했기 때문이다. 코비 브라이언트, 케빈 가넷, 트레이시 맥그레디, 저매인 오닐 등 대부분의 고졸 스타들이 그랬다. 그보다 거친 프로 무대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도태되는 경우는 훨씬 더 많았다.

하지만 르브론은 달랐다. 당시 우승후보였던 새크라멘토 킹스와 데뷔전을 치렀는데, 이 경기에서 르브론은 25점 6리바운드 9어시스트 4스틸 FG 60.0%를 기록하며 세간을 충격에 빠뜨렸다. 대학 무대를 거치지 않은 만 18세의 고졸 선수가, 데뷔전에서 그것도 우승후보팀을 상대로 믿을 수 없는 활약을 펼친 것이었다. 동료의 움직임을 살려주는 환상적인 패스, 경이로운 운동능력과 저돌적인 돌파 등 그의 장기를 데뷔전에서 이미 다 보여줬다.

클리블랜드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르브론은 폭발적인 활약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크리스마스 매치에서는 트레이시 맥그레디를 상대로 34점이나 넣었고, 전년도 챔피언 샌안토니오 스퍼스를 상대로 32점 11리바운드를 기록하며 팀 승리를 견인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뉴저지 네츠(現 브루클린)를 상대로는 41점을 폭발시키며 역대 최연소(당시 19세 88일)로 40득점을 돌파하며 신기록을 세웠다. 

시즌이 끝났을 때 르브론 제임스의 평균 기록은 20.9점 5.5리바운드 5.9어시스트 1.6스틸에 달했다. 당시 기준으로 신인이 평균 20점-5리바운드-5어시스트를 달성한 경우는 오스카 로버트슨, 마이클 조던에 이어 세 번째였다. (2009-10시즌 타이릭 에반스와 2018-19시즌 루카 돈치치가 추가되었다.) 르브론은 ‘올해의 신인’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 진정한 신인왕은 나야 나, 카멜로 앤써니

하지만 일부 팬들은 2003-04시즌의 진짜 신인왕은 르브론이 아니라 카멜로 앤써니라고 말한다. 르브론의 클리블랜드는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지만, 카멜로 앤써니가 이끄는 덴버 너게츠는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해당시즌 앤써니의 개인 기록도 르브론에 밀리지 않았다. 그는 평균 21점 6.1리바운드 2.8어시스트 1.2스틸을 기록했다. 야투성공률은 42.6%였고, 3점슛은 32.2%, 자유투는 77.7%로, 르브론(41.7% - 29.0% - 75.4%)보다 높았다.

카멜로 앤써니는 오크힐 고등학교 시절부터 르브론 제임스의 라이벌로 각광 받았다. 심지어 고교 시절에는 르브론과의 맞대결에서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었다. 르브론보다 생일이 빨랐던 앤써니는 2002-03시즌을 시라큐스 대학에서 보냈다. 그리고는 대학농구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활약을 펼치며 시라큐스 대학을 NCAA 토너먼트 챔피언에 등극시킨다. 신입생의 몸으로 팀을 대학농구 우승까지 이끌었던 것이다.

앤써니는 2003 드래프트 3순위로 덴버에 입단했고, 뛰어난 기량을 보여줬다. 이 당시의 앤써니는 굉장히 날랜 움직임을 바탕으로 내외곽을 휘젓는 등 보다 스윙맨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줬다. 중장거리 점프슛은 이때 이미 어느 정도 완성이 되어 있었다. 그는 2월 12경기에서 평균 27.1점 6.3리바운드 2.6어시스트 FG 49.2%로 맹활약했고, 정규리그 마지막 9경기에서는 평균 26.7점 6.3리바운드 FG 46.3%를 올리며 덴버의 플레이오프 진출을 일궈냈다. 

2002-03시즌 17승으로 꼴찌를 차지했던 덴버는 2003-04시즌 43승을 거두며 환골탈태했다. 슈퍼루키 앤써니의 대활약 덕분이었다. 하지만 앤써니가 신인왕에 등극하는 일은 없었다. 그는 신인상 투표에서 2등을 차지했다. 총 118표 중 78표를 획득한 르브론이 신인상을 받았다. 앤써니는 40표를 획득했다.

 

2009-10시즌 타이릭 에반스
평균 20.1점 5.3리바운드 5.8어시스트 1.5스틸 FG 45.8%

타이릭 에반스는 어린 시절부터 농구천재로 각광받았다. 고교 2학년 때부터 트레이시 맥그레디와 비교되었으며, 4학년 때는 평균 32.1점 8.8리바운드 5.7어시스트 4.3스틸을 올리는 괴물 같은 활약을 했다. 또, 전국의 천재들만 모인다는 맥도날드 고교 올스타전에서 브랜든 제닝스와 함께 공동 MVP를 수상하기도 했다. 이러한 활약을 덕분에 존 칼리파리 감독이 이끄는 멤피스 대학에 진학하게 되었다. 

2008-09시즌 멤피스 대학의 신입생이 된 타이릭 에반스. 환상적인 돌파 실력을 앞세워 대학 무대에서도 화려하게 빛난다. 당시 존 칼리파리 감독은 ‘드리블 드라이브 모션 오펜스’를 활용했는데, 이는 에반스의 돌파 능력과 시너지를 일으켰다.

새크라멘토 킹스는 2009 NBA 드래프트 4순위 지명권으로 타이릭 에반스를 영입했다. 당시 킹스는 리빌딩 중이었는데, 신인이었던 에반스가 에이스 롤을 맡게 되었다. 에반스는 멤피스 시절과 거의 비슷한 역할을 맡아 돌파하고, 돌파하고, 또 돌파했다. 

이때의 에반스는 외곽슛 능력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공격을 3점슛 라인 안쪽에서 전개하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균 20점을 넘길 정도로 훌륭한 활약을 펼쳤다. 특히 클러치 상황에서 활약이 대단했다. 그는 엄청난 강심장이었다. 밀워키전에서 보여준 유로스텝 레이업 위닝샷, 덴버전에서 보여준 드림쉐이크 위닝샷은 압권이었다. 또, 당시 슈퍼스타 길버트 아레나스와의 1대1 상황에서 공을 스틸했고, 이와 동시에 얻어낸 자유투로 경기를 그대로 끝낸 적도 있었다.

그러나 에반스의 신인상 수상은 결코 쉽지 않았다. 동포지션 라이벌 브랜든 제닝스와 스테픈 커리 때문이었다. 브랜든 제닝스는 데뷔 첫 10경기에서 평균 25.2점 4.6리바운드 5.9어시스트 FG 48.2% 3점슛 51.9%(2.7개)를 찍는 등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특히 골든스테이트전에서 신인 역대 최고 기록인 55점을 퍼부었을 때는 그야말로 리그가 완전히 뒤집어졌다.

스테픈 커리는 시즌 초반에는 다소 부진했으나 올스타 휴식기를 기점으로 리그에 완벽하게 적응했다. 그는 시즌 마지막 20경기에서 23.1점 5.3리바운드 7.6어시스트 2.1스틸 FG 47.4% 3점슛 49.6%(3.1개) 자유투 90.3%를 기록했다. 우리가 아는 그 귀신같은 슈팅 효율을 이때 이미 보여줬던 것이다.

다만 제닝스는 시즌 후반기 들어 기복이 굉장히 심해지면서 표심(?)을 많이 잃었다. 2009-10시즌 신인상 투표 결과는, 총 123표 중 67표를 획득한 타이릭 에반스의 승리로 끝이 났다. 커리는 43표를 받았고, 제닝스는 12표를 기록했다.

 

2010-11시즌 블레이크 그리핀
평균 22.5점 12.1리바운드 3.8어시스트 FG 50.6%

자이온 이전에 그리핀이 있었다. 2018-19시즌 듀크 대학의 신입생 자이온 윌리엄슨을 신들린 퍼포먼스로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 정확히 10년 전에는 블레이크 그리핀이 딱 그랬다. 자이온과 비슷한 플레이스타일, 초인적인 운동능력을 가지고 대학 무대를 휩쓸어 버렸다.

2008-09시즌 오클라호마 대학의 그리핀은 평균 22.7점 14.4리바운드를 기록하며 만장일치로 올-아메리칸 퍼스트팀에 선정되었다. 이때 그리핀의 골밑 활약과 운동능력은 그야말로 인간이 아니었다. 덩크를 시도하다 백보드에 머리를 부딪치는 사건도 있었다. 얼마 전 자이온 윌리엄슨을 보고 느꼈던 그 공포를 그리핀이 이미 10년 전에 보여줬던 것이다.

2009 드래프트에 참가한 그리핀은 당연히 1순위로 지명됐다. 원래대로라면 에반스가 아니라 그리핀이 2009-10시즌 신인상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리핀은 데뷔 첫해부터 시즌아웃 부상을 당하는 대형악재를 만난다. 2009년 서머리그 MVP에 손쉽게 오르는 등 기대감을 키웠으나, 2009-10시즌 개막 직전 시범경기 도중 무릎을 다치는 바람에 1년을 통째로 쉬게 된 것이었다.

그리핀은 1년 동안 재활에 매진했고, 2010-11시즌에서야 공식적인 데뷔전을 치르게 되었다. 결과는? 초대박이었다. 무릎 부상 후유증 따위는 없었다. 그리핀은 데뷔전부터 20점 14리바운드 (공격 리바운드 9개) 4어시스트 FG 57.1%를 기록하는 등 펄펄 날아다녔다. 마치 코트 위에 짐승 한 마리를 풀어놓은 것 같았다. 당시의 그리핀은 외곽슛은 거의 던지지 않았고, 미친 운동능력을 활용해 페인트존을 맹폭했다.

그리핀은 데뷔 후 한 달이 지나기도 전에 40점 벽을 뚫었다. 뉴욕 닉스와의 홈경기에서 44점 15리바운드 7어시스트를 기록했는데, 이날 믿을 수 없는 덩크 하이라이트를 여러 개 남겼으니 유튜브에서 꼭 찾아보시라. 게다가 1월 중순 인디애나 페이서스를 상대로는 47점 14리바운드 FG 79.2%를 폭발시키며 팀 승리를 이끌기도 했다. 워싱턴전에서는 33점 17리바운드 10어시스트로 트리플-더블을 기록했고, 시즌 최종전이었던 멤피스전에서도 31점 10리바운드 10어시스트를 찍었다.

신인이 올스타전에 초대 받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그리핀은 이를 해냈다. 뿐만 아니라 슬램덩크 콘테스트에 참가해 자동차를 뛰어넘는 묘기를 부리며 우승컵에 입맞춤했다. 뿐만 아니라 이 시즌 그가 남긴 각종 슬램덩크 하이라이트는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사람들은 “1997-98시즌 팀 던컨 이후 최고의 빅맨이 등장했다”며 감탄했다. 결과는? 역대 세 번째 만장일치 신인상(1984 랄프 샘슨, 1990 데이비드 로빈슨). 그리핀은 1위표 118장을 싹쓸이했다. 이처럼 그리핀의 데뷔는 실로 엄청난 충격을 남겼다.

 

잊으면 섭섭한 신인왕들

2011-12시즌 등장한 카이리 어빙은 처음부터 완성형인 스킬을 들고 왔다. 눈을 사로잡는 놀라운 드리블 묘기를 바탕으로 코트를 수놓았고, 위닝샷과 클러치샷도 숱하게 터뜨렸다. 첫 시즌부터 대형스타 탄생의 싹을 보여준 선수였다. 평균 18.5점 3.7리바운드 5.4어시스트 FG 46.9% 3점슛 39.9% 자유투 87.2%

바로 이어 2012-13시즌에는 데미안 릴라드가 등장했다. 그는 첫 경기에서 레이커스를 상대로 23점 11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또, 데뷔 첫 세 경기에서 모두 20점을 넘겼다. 뿐만 아니라 총 185개의 3점슛을 기록하며 신인 최다 3점슛 신기록을 세웠다. 종전 기록은 2009-10시즌 스테픈 커리가 넣은 166개였다. (릴라드의 기록은 2017-18시즌 도노반 미첼이 187개를 넣으면서 깨진다.) 릴라드는 평균 19.0점 3.1리바운드 6.5어시스트 FG 42.9% 3점슛 36.8%를 기록하며 포틀랜드의 주력으로 올라섰고, 역대 네 번째 만장일치로 신인왕에 올랐다.

2013-14시즌 신인왕이었던 마이클 카터-윌리엄스는 아마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데뷔전을 치른 선수가 아니었을까 싶다. 당시 기준 2년 연속 챔피언 마이애미 히트를 상대로 22점 7리바운드 12어시스트 9스틸로 쿼드러플-더블급 활약을 펼치며 필라델피아의 승리를 견인했다. 평균 기록은 16.7점 6.2리바운드 6.3어시스트.

2015-16시즌에는 칼-앤써니 타운스가 역대 다섯 번째로 만장일치 신인상을 받았다. 평균 18.3점 10.5리바운드 FG 54.2%를 기록한 덕분이었다. 2017-18시즌 신인왕 벤 시몬스는 평균 15.8점 8.1리바운드 8.2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매직 존슨의 재림’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한편, 2018-19시즌에는 루카 돈치치가 평균 21.2점 7.8리바운드 6.0어시스트로 대활약하며 신인왕을 예약했다. 뿐만 아니라 트레이 영도 19.1점 3.7리바운드 8.1어시스트를 기록하는 등 놀라운 활약을 펼쳤다. 차기 시즌에는 또 어떤 루키가 농구 팬들을 즐겁게 할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사진 제공 = 로이터/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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