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퇴 기자회견 중인 주희정(위 왼쪽)과 아들 주지우 군

[루키=김영현 기자] 20년간 오뚝이처럼 코트에 섰던 ‘레전드 가드’ 주희정의 은퇴. 그를 응원하던 팬 김예슬 씨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이제 ‘선수’ 주희정은 볼 수 없지만, ‘지도자’로서의 삶도 변함없이 응원할 계획이다.

주희정은 1997년 원주 나래 블루버드에서 데뷔해 1997-1998시즌부터 2016-2017시즌까지 총 20시즌 동안 코트를 누볐다. 그 기간 정규리그 1029경기에 출전했는데, 총 1044경기 중 단 15경기만을 결장할 정도로 ‘꾸준함의 상징’이었다. 적지 않은 나이에도 변함없이 코트를 누빌 정도로 자기관리에 철저했고, 끊임없는 연습으로 자신을 혹독하게 채찍질했다.

그는 은퇴 기자회견에서 “아직 은퇴한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아내에게 ‘은퇴하면 농구를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얘기한 적이 있는데, 아무래도 저 주희정은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도 농구에 대한 열정을 놓을 수 없을 것 같다”며 눈시울을 붉히면서도 “명 지도자로서의 큰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코트에 돌아올 날을 새로이 기약했다.

그에게 ‘은퇴’라는 사실이 큰 충격으로 다가왔듯, 그를 응원하는 팬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그가 안양 KT&G에서 서울 SK로 이적한 2009-2010시즌부터 응원하기 시작해 그를 따라 서울 삼성까지 응원하게 된 ‘주희정 할머니’ 김예슬 씨에게는 충격이 더 컸다. 몇몇 팬들이 기자회견에 참석한 것과 달리, 김 씨는 개인 사정으로 인해 참석하지 못했다.

김 씨는 <루키>와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은퇴 기자회견에) 가고 싶었는데 못 갔어요. (주희정의 은퇴가) 속상해 죽겠네요. 하지만 훌륭한 지도자로 돌아올 거니까 그때 보면 돼요”라며 마음을 다독이고 있었다.

▲ 기념사진 촬영 중인 주희정(왼쪽)과 팬 김예슬 씨

막상 말은 이렇게 했지만, 주희정의 은퇴가 발표된 후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김 씨는 “저는 울었어요. 지금도 누가 어르면 울 것 같아요. 나이가 있으니까 소리 내서 울지도 못하고, 어디 가서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데 못 하니까 답답하고 그래요. 이루 말할 수 없어요. 저는 ‘혹시 또 못 만나면 어떡하나’라는 생각에 항상 조마조마하긴 했어요. (삼성이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해) 2016-2017시즌이 길었잖아요. 다음 시즌이 더 가까워졌다는 생각에 엄청 기뻐했는데, (은퇴 소식 보고) 대낮에 하늘이 노랗더라고요”라며 당시 심정을 밝혔다.

그가 뛰는 모습을 계속 보고 싶었지만, 혹여나 부담이 갈까 싶어 그런 말은 전한 적도 없다.

김 씨는 “나는 우리 선수 신경 쓸까 봐 그런 말을 절대로 안 했어요. 선수가 알아서 잘 판단하시니까요. 신경 쓰시는 일이고, 연습을 열심히 하는 양반인데 거기다 내가 말 잘못 내뱉으면 신경 쓰잖아요. 악수도 하고 싶고, 안아도 보고 싶은데 못 하잖아요”라고 말했다.

주희정이 ‘지도자가 되겠다’고 공언했지만, 여전히 김 씨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그가 코트로 돌아올 날이 언제인지, 또 어느 팀을 맡을지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김 씨는 “사람들 만나서 (주희정 선수 은퇴 소식을) 잊어버리려고 해요. 음식도 소화가 안 돼요. 팬들은 다 같은 마음이겠지만, 저도 젊은 사람 못지않게 응원했거든요. 조마조마하던 게 막상 닥치니까 정신이 없네요. 지도자로 만나긴 할 텐데, 어느 팀으로 갈는지… 은퇴 기자회견에 간 팬이 소식을 전해주는데, 저나 그 팬이나 답답한 마음이죠”라며 속상해했다.

김 씨가 이토록 주희정을 응원하는 데는 실력도 실력이지만, 따뜻한 심성도 크게 차지했다.

김 씨는 “마음이 따뜻하고 항상 정직하고 팬들한테 잘해주고 가정적이잖아요. 그래서 좋은 거예요. 선수님이 SK 시절에 ‘아이 넷과 아내까지 해서 보석이 다섯 개’라고 말했더라고요. 저한테는 선수님까지 해서 보석이 여섯 개예요. 말로는 다하지 못하고, 바라보기도 아까운 선수예요”라며 그를 향한 진득한 마음을 표했다.

그를 응원하는 마음이 워낙 크다 보니, 불필요한 오해도 받았을 터. 김 씨는 “이 나이에 이렇게 선수를 좋아하는 걸 보고 오해할 수도 있는데, 정말 잘하고 착한 선수를 응원하면서 제 정신 건강도 좋아졌어요. 외국 영화 보면 나이 많은 사람이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를 응원하잖아요. 저도 그런 한 사람이에요. 절대 이상한 마음은 아닙니다”라고 단호히 말했다.

오랜 시간 응원하다 보니 흥미로운 에피소드도 있었다. 김 씨는 “처음에 주 선수가 ‘사모님’이라고 부르길래 ‘그렇게 하면 일체 말 안 할 겁니다. 이모라고 부르세요’라고 했잖아요. 하하. 그간 ‘썬더스 이모’였는데, 이제 ‘어디 이모’가 될지 모르겠네요”라며 씁쓸함을 달랬다.

김 씨는 주희정이 SK에 있을 때는 팀 색깔에 맞춰 빨간 의상을 입었고, 삼성으로 옮긴 후에는 파란 의상을 입었다. 주희정을 향한 마음을 표현하는 김 씨만의 독특한 방식이다.
김 씨는 “지금 우리 집도 온통 파란색이에요. 실사다가 머리띠, 모자를 뜨고 나름대로 응원하고 좋았는데, 지도자가 되시면 격식에 갖춰서 점잖게 응원해야죠”라고 귀띔했다.

김 씨는 선수 주희정도, 지도자 주희정도 온 마음을 다해 응원할 계획이다. 다만 바람이 있다면, 집에서 가까운 편에 속하는 잠실체육관까지도 환승을 네 번 해야 올 수 있을 정도인 터라, ‘될 수 있으면 가까운 곳에서 지도자 생활을 했으면’ 하는 마음 그뿐이었다.

“우리 선수님이 좋은 지도자가 될 거로 믿습니다. 기독교인이어서 주희정 선수 가정에 행복과 축복만 달라고 기도하는데, 이제 좋은 지도자가 되도록 기도할 거예요. 죽을 때까지 변함이 없어요. 두 발로 못 가면 네 발로라도 갈 거예요. 목숨이 붙어있는 한 응원할 겁니다.”

사진 = KBL, 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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