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 편집부 =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표현은 꽤 많다. 사자성어에도 수두룩하다. 남귤북지(남쪽 땅 귤나무를 북쪽에 옮겨 심으면 탱자나무로 변한다), 마중비종(구부러진 쑥도 삼밭에 나면 저절로 꼿꼿하게 자란다), 맹모삼천지교 등 조금만 찾아보면 학습 환경이 좋지 않거나 주변 영향으로 일의 성과가 없을 때 쓰는 네 글자가 참 많다.

앤써니 데이비스(23, 뉴올리언스 펠리컨스)의 ‘환경’은 어떨까. 뉴올리언스는 데이비스의 성장에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기 쉽지 않다. 데이비스도 많은 선배들이 그랬듯 데뷔 초창기 ‘원맨팀 리더’로서 커리어를 이어 가고 있다. 마이클 조던, 케빈 가넷, 찰스 바클리, 월드 B 프리처럼 말이다.

 

이상적인 시나리오는 존재한다. 프랜차이즈에 남아 준척급 동료를 하나둘씩 새 식구로 맞이하고 전력을 살찌워 우승을 이루는, 아름다운 ‘성장담’을 쓰는 것이다. 리그 트렌드가 돼버린 슈퍼팀 결성보다 올드 팬들을 더 자극할 수 있는 방법이다. 뉴올리언스와 데이비스는 그런 이야기를 꿈꾸고 있는 듯하다.

때로는 꿈에서 깨어나 현실적인 발걸음을 내딛는 게 필요할 때가 있다. 지금의 데이비스가 그렇다. 그는 깨달아야 한다. 뉴올리언스는 ‘갈매기 비상’을 막고 있다. 뉴올리언스 생활은 그의 전성기를 낭비하게 하고 있다. 데이비스가 지닌 잠재력은 역대급이다. 그가 가진 재능을 모두 터트린다면 카림 압둘-자바와 견줄 수도 있다는 전문가가 많다. 한 언론은 “이 두 선수가 다른 점은 오직 하나다. 압둘-자바는 데뷔 초부터 뉴욕과 로스앤젤레스(LA)라는 대도시를 원했고 AD는 아직까지 그런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 않다는 것”이라며 지난해 5년 재계약을 맺은 데이비스의 판단을 비꼬았다.

물론 압둘-자바는 밀워키 벅스 시절 한 차례 파이널 우승을 이뤘다. 전성기에서 살짝 내려오는 시점의 오스카 로버트슨을 새 파트너로 맞아 1971년 정상 고지를 밟았다. 그러나 데이비스는 다르다. 현대 농구에서 구단이 운영되는 매커니즘 또는 스몰 마켓인 팀 재정상 로버트슨 정도의 선수가 뉴올리언스에 둥지를 틀기는 어렵다.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 압둘-자바가 LA 레이커스 이적 뒤 손에 끼운 반지 수를 생각해본다면 더 명확해진다. 많은 전문가들은 압둘-자바의 롱런이 ‘쇼타임 레이커스’ 시절 뛰어난 동료를 만났던 점이 크게 한몫했다고 입을 모은다. 분업화에 몸담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났다는 것이다. 덕분에 체력(출전 시간 조절)이나 정신적 스트레스(탑독 지위에 익숙한 경험)를 세이브할 수 있었다고 본다. 데이비스도 과감히 커리어 두 번째 출발을 시작할 필요가 있다. 팀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은 결정이 될 가능성이 있다.

 

◆ 방향 잃은 팀 리빌딩…암울한 미래

펠리컨스는 현재와 미래, 모두 암울하다. 뉴올리언스는 NBA의 대표적인 ‘종합병동’이다. 인저리-프론 집합소나 다름 없다. 고액연봉자도 많다. 지난 시즌 에릭 고든-루디 게이 트레이드 불발이 뉴올리언스가 처한 현실을 상징적으로 대변한다. 당시 팀은 퀸시 폰덱스터, 타이릭 에반스가 한꺼번에 부상으로 빠져나가 2, 3번 포지션 구멍을 메우고자 동분서주했다. 

뉴올리언스 프런트는 득점력이 뛰어난 게이를 새 식구로 들여 데이비스의 공격 부담을 줄어주려고 했다. 그러나 이 트레이드는 성사되지 못했다. 새크라멘토가 메디컬 테스트 과정에서 고든의 손가락 부상을 발견했기 때문. 연봉 부담 조정에서도 난색을 표했다. 결국 협상 테이블을 접었다. ESPN은 이 일을 두고 “29개 팀이 뉴올리언스가 내놓는 ‘매물'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는 점을 확실히 일러 준 에피소드”라며 그들의 현주소를 아프게 꼬집었다. 

혹자는 말한다. 아직은 이적을 논할 때가 아니라고, 가넷과 바클리, 카멜로 앤써니와 크리스 폴처럼 홀로 팀을 이끌며 고군분투한 뒤 충분히 주변 사람들에게 “아, 저 선수라면 할 만큼 했다. 떠날만 하다”라는 여론이 형성되면 그때 떠나야 한다고. 

그러나 데이비스와 이들이 다른 점이 있다. 이 스물셋 젊은 빅맨은 6월은커녕 5월에도 농구 코트를 밟기가 쉽지 않다. 현재 뉴올리언스가 보유한 전력으론 플레이오프 진출을 낙관할 수 없다. 위에 언급한 원맨팀 리더들은 최소 봄 농구 무대를 꾸준히 밟았다. 파이널 스테이지를 눈앞에서 놓치기도 했다. 더 큰 무대에서 깨지고 무너지며 경험을 쌓았다. 플레이오프조차 나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데이비스가 얻을 경험의 폭과 깊이는 제한적일 가능성이 크다. 그저 ‘높은 개인 기록과 팀 패배’ 구조가 반복돼 언론의 ‘고독한 에이스, 외로운 갈매기’ 프레임에 갇힐 확률이 높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펠리컨스에는 타 팀에서 군침을 흘릴 만한 재목이 데이비스뿐이다. NCAA 최고 슈터 버디 힐드도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는 평이다. 들쑥날쑥한 슈팅으로 아쉬움을 사고 있다. 최근 4~5년간 구단 행보도 (결과적으로) 아쉽다. 팀 수뇌부는 데이비스를 보좌할 위력적인 2ㆍ3옵션을 영입하는 데 애를 먹었다. 다수의 스타플레이어 영입으로 단숨에 대권 후보로 부상하는 ‘큰 그림'은 언감생심이다. 올 시즌 뉴올리언스의 로스터를 살펴보면 AD 주변에 애매한 베테랑들이 다수 포진돼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드래프트 픽 수집보다 FAㆍ트레이드 시장에서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던 점을 고려하면 아쉬운 결과물이다.

최근 몇 년간 뉴올리언스가 영입한 선수 명단을 쭉 살피면 한숨부터 나온다. 센터 오메르 아식은 현지 언론으로부터 ‘재앙’이라는 표현을 들을 정도로 원색적 비난을 받고 있다. 부상 여부를 떠나 리그에서 가장 느린 선수 중 한 명이다. 그는 앨빈 젠트리 감독의 농구 철학과 대척점에 서 있다. 데이비스와의 플레이 동선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뉴올리언스에 왔을 때 아식은 계약이 1년 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프런트는 귀중한 1라운드 지명권(전체 4~19순위 권리 양도)을 내주며 얻은 아식을 잃지 않기 위해 FA 자격을 얻은 그에게 오버 페이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5년 5,800만 달러짜리 계약서는 팀은 물론 선수 개인의 발목도 잡는 악성 계약이 될 확률이 높다.

타이릭 에반스 영입도 실패에 가깝다. 그의 영입을 고민할 때 저울질했던 대안이 트레버 아리자, 알-파룩 아미누였다. 결과적으로 에반스가 위 두 선수보다 더 나은 생산성을 보이지 못했다. 에반스는 지난 시즌 25경기 출전에 그친 데 이어 올 시즌엔 아예 ‘개점휴업' 상태나 마찬가지다. 최근 9개월 동안 무릎 수술만 3번 받았다. 경기력을 논하기에 앞서 코트를 밟는 횟수가 너무 적다. 연봉도 높다. 승리 기여도는 현저히 낮지만 4년간 4,398만 달러를 수령한다. 해마다 1,100만 달러에 이르는 액수를 챙기는 셈. 그가 정상 컨디션으로 복귀한다 해도 AD와 함께 ‘더 높은 곳'을 바라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에릭 고든은 어떨까. 고든은 2011-12시즌을 앞두고 팀 내 최고 스타 크리스 폴과 트레이드되어 뉴올리언스에 합류했다. 결과는 모두가 잘 알고 있다. 명백한 실패작이 됐다. 트레이드 첫해 9경기 만에 시즌-아웃 판정을 받았다. 이후 고든은 다시는 예전 같은 퍼포먼스를 보이지 못했다. 평균 20점대 공격수로서의 위용을 잃어버린 것. 리그에서 손꼽히는 듀얼가드로서 데이비스(프런트 코트)와 코트를 양분해주길 바랐던 구단의 기대를 저버렸다. 뉴올리언스 생활 5시즌 동안 221경기 출전에 머물렀다. 지난 시즌에도 37경기나 결장했다. 그러더니 올 시즌을 앞두고 휴스턴 로케츠로 이적했다. 고든은 끝내 펠리컨스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한 채 둥지를 떠났다.

즈루 할러데이도 있다. 데뷔 첫 4시즌 동안 298경기(전체 일정의 90.8%)에 출전했던 할러데이는 뉴올리언스 이적 후 거짓말처럼 부상에 신음했다. 3년간 고작 139경기 출전에 그쳤다. 올 시즌에는 개인 사정(아내 병간호)으로 뒤늦게 로스터에 합류했다. 

스트레치형 빅맨 라이언 앤더슨도 목 부상으로 제 컨디션을 보이지 못했다. ‘유리몸의 대명사'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었을 뿐이다. 

이처럼 펠리컨스가 영입하는 선수마다 부상과 기량 하락을 겪었다. 구단도 영리하지 못한 협상력으로 빈축을 샀다. 팀과 선수 모두 스텝이 꼬였다.

 

 

◆ 뉴올리언스, 대어(大魚)에겐 너무 좁은 '개울'

사실 이 모든 것은 시장 특수성이 감안된 결과다. 뉴올리언스는 리그의 대표적인 스몰 마켓이다. NBA 사무국으로부터 늘 경기장 보조금 문제, 연고지 재배치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경기 티켓 판매량 유지가 중요하다. 이 탓에 쉽사리 탱킹 노선을 택할 수가 없다. 팀 성적 추락은 티켓 판매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순식간에 팀이 구조적 위기에 봉착할 가능성이 크다. 사무국의 ‘현미경 관찰'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 전력 강화를 위한 수단적 측면에서 뉴올리언스는 운신의 폭이 상당히 좁은 셈이다. 여러 언론은 그들의 미래를 암울하게 보고 있다. 『NBC 스포츠』는 지난 2월 “델 뎀프스 단장이 이 팀을 진지한 대권 후보로 만들 확률은 데이비스가 ‘신(神)'으로 군림하는 것과 별개 문제다. 구조적으로 실타래가 매우 꼬여 있는 상태"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펠리컨스는 일단 로스터의 매력이 너무 떨어진다. 전체적으로 구성이 꼬여 있다. 부상이 잦고 오버 페이 플레이어도 많다. 순수 기량만 놓고 봐도 트레이드 카드를 맞추기가 쉽지 않다. 그게 현재의 뉴올리언스다. 아무도 아식을 1,000만 달러 넘는 돈으로 영입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최근 영입한 이트완 무어, 솔로몬 힐은 어느 팀에 가도 1옵션의 공격 부담을 덜어줄 수 없는 자원들이다. 팀의 중심인 데이비스를 매물로 내놓으면서 리빌딩 단추를 누르는 게 현명한 선택이 될 수 있다. 데이비스는 다가오는 2020년 FA가 된다. 이 시기가 생각보다 빨리 올 수 있다. 오클라호마시티 썬더의 ‘젊은 빅 4'가 어떤 종말을 맞았는지 고려하면, 반 박자 빠른 과감한 결정의 필요성은 더 커진다. 제임스 하든, 케빈 듀란트를 손 놓고 잃은 오클라호마시티의 사례는 뉴올리언스에게 좋은 반면교사다. ‘AD 트레이드'를 통한 다각적인 접근 시도는 아프지만 현실적인 대안이다. 꼬인 부문을 하나하나 풀기보다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단칼에 문제해결을 도모하는 과감성이 필요하다.

◆ 올 여름 ‘마지막 버스’…놓친다면 ‘떠나야 산다’

올 시즌이 끝나면 할러데이, 에반스의 계약이 종료된다. 둘 모두 1,000만 달러 이상의 연봉을 받는 선수들이다. 연봉을 깎고 잔류하든 팀을 떠나든 뉴올리언스 입장에선 마지막 베팅 기회다. 이 금액으로 준척급 FA를 데려올 수 있다. 샐러리캡도 대폭 늘어나 적어도 ‘파이 분배’에 관한 골칫거리는 사라졌다. 할러데이와 에반스는 분명 좋은 선수들이지만 부상이 잦고 플레이오프 상위 시드로 올라가는 데 있어 핵심 역할을 수행하긴 힘든 재능이다. 

천우신조다. 뉴올리언스는 천금 같은 팀 로스터 ‘재편집 기회’를 살뜰하게 활용해야 한다. 여기서도 부진한 협상력을 보인다면 1990년대 LA 클리퍼스와 덴버 너게츠, 2000년대 미네소타 팀버울브스, 2010년대 브루클린 네츠 못지않은 암흑기가 도래할 것이다. NBA 연고지로서의 지위도 장담할 수 없다.

 

사진 제공 = Gettyimages/이매진스, NBA 미디어 센트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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