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박상혁 기자] KBL(한국농구연맹)은 지난 5월 27일 제7차 이사회를 통해 아시아쿼터 제도를 일본(B.리그)을 대상으로 시행하기로 했다. KBL 측은 국내 프로농구 경쟁력 강화, 글로벌 시장 확대, 선수 육성 및 마케팅 활성화를 위한 토대를 구축하기 위함이라고 이번 아시아쿼터 제도 도입의 이유를 설명했다. 

또한 KBL은 향후 중국, 필리핀 리그와도 교류 활성화를 통해 범위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제도 도입과 더불어 일본인 선수가 한국에서 뛰는 것이 결정되면서 스타트는 나쁘지 않다. 

하지만 새로운 제도를 시행하는 만큼 그에 따른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고 실제로 선수를 영입해야 하는 국내 구단과 일본 구단들의 반응은 아직은 좀 더 지켜보자는 추세다. 

해당 기사는 <루키 더 바스켓> 2020년 7월호에 게재된 기사를 추가/각색했습니다.

KBL은 이정대 총재 취임 이후 리그 발전을 위해 다각도로 방법을 모색해왔다. B.리그와의 이번 아시아쿼터 제도 도입도 그런 시도 중의 하나가 결과물로 이어진 셈이다. 

이정대 총재는 마카오에서 열린 터리픽 12를 다녀오면서 각 리그 연맹이 중심이 돼 아시아 리그를 만드는 것이 시장을 넓히고 농구의 저변 확대를 위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했다. 마침 일본 B.리그의 오오카와 마사아키 당시 총재 역시 이정대 총재와 같은 생각을 가진 인물이었다. 

이러면서 두 총재의 만남이 성사됐고 각 리그의 챔피언결정전을 상호방문하며 이야기를 구체화시켰다. 연맹 차원의 MOU를 맺은 뒤에는 양 리그의 실무진이 매월 도쿄와 서울에서 만나 아시아쿼터 제도와 유소년농구 교류 등의 사업을 논의했다. 

두 총재 모두 한국와 일본을 넘어 중국, 필리핀, 대만까지 포함해 아시아쿼터제를 하고 궁극적으로는 아시아 리그를 만들자는 것에는 동의했지만 파이를 키우는 데 생각보다 걸림돌이 많았다. 중국은 협조가 잘 이뤄지지 않았고 필리핀과 대만은 합의점을 찾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이에 가까우면서도 서로 긴밀히 협조가 되는 한국과 일본, KBL과 B.리그 먼저 시작하자는 데 합의했다. 

KBL의 아시아쿼터 선수 영입 기준은 일본 선수(귀화, 이중국적, 혼혈선수 제외)를 대상으로 구단 자율 영입이며 1명 보유, 국내 선수 기준으로 출전하며 샐러리캡 및 선수 정원에 포함된다. 물론 국내 선수의 일본 B.리그 진출 또한 가능하다.

적극적이었던 일본 B.리그 팀들   

아시아쿼터제 도입의 발표는 5월말에 이뤄졌지만 논의는 이미 지난해부터 되고 있었다. 당연히 KBL이나 B.리그 구단들 역시 이 제도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이런 과정 속에 처음 적극적으로 움직인 것은 B.리그 구단들이었다. 

히타치를 모기업으로 하고 있으며 도쿄를 연고로 하는 선 로커스 시부야는 지난 2018년에 울산 현대모비스 구단과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이때는 아시아쿼터제까지는 아니어도 한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구단으로서 전지훈련 기간에 상호 교류를 하면서 연습경기도 산하 유소년농구클럽끼리의 교류 등이 주목적이었다. 

하지만 아시아쿼터제가 시행되면서 결과론적으로 국내 선수에 대한 정보 수집을 위한 하나의 발판을 마련하는 계기가 됐다. 

국내 농구팬들에게도 친숙한 일본의 국가대표 가드 토가시 유키가 소속된 지바 제츠 후나바시는 지난 시즌 중 한국을 찾았다. 지바 구단은 서울 SK와 서울 삼성, 안양 KGC인삼공사의 경기를 관전하며 3개 구단 관계자와 인사를 주고 받는 등 관계 개선에 힘썼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서울 SK 나이츠와 업무 협약을 맺으며 한국 선수 선발의 교두보를 마련했다. 지난 시즌 말미에 SK의 오경식 단장이 일본을 찾아 협약을 체결하며 아시아쿼터제를 비롯한 여러 부문에서 도움을 주고 받기로 합의했다.   

시부야와 지바, 여기에 도요타자동차가 모기업인 앨버크 도쿄는 실제로 한국 선수와 영입 협상을 벌이기도 했다. 지금은 고양 오리온의 유니폼을 입은 이대성이 그 대상이었다. 

이 3개 구단은 FA 자격을 얻은 이대성과 화상 통화 등을 통해 협상을 가졌다. 이대성 역시 새로운 팀을 정하는 작업이 어려워지면서 일본 진출을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스폰서비 등 수입이 줄어들면서 이 구단들이 초반과 달리 영입에 소극적으로 변했고 이대성 역시 아내의 만류로 국내 잔류를 결정하면서 한국인 최초의 B리거 탄생은 나오지 못했다. 

만약 코로나19가 없었다면 일본인 최초의 KBL 리거보다 한국인 최초의 B리거 탄생이 먼저였을지도 모른다. 

※ 이후 양재민이 B.리그 신슈 브레이브 워리어스에 입단하면서 한국인 최초의 B리거 탄생이 이뤄졌다. 

②편에서 계속... 

사진 = KBL, B.LEAGUE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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