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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환의 앤드원] 무엇이 마이클 조던을 역대 최고로 만들었나

기사승인 2020.05.20  14:3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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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키=이동환 기자] 지난 4월 20일 처음 방영된 ESPN-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더 라스트 댄스>가 지난 5월 17일 10화를 끝으로 마침내 마무리됐다. 마이클 조던이 시카고에서 보낸 마지막 시즌인 1997-1998시즌을 중심으로 조던의 일대기를 다룬 <더 라스트 댄스>는 북미에서만 수백만명의 시청자들을 끌어모으며 큰 인기를 끌었다. 더불어 마이클 조던과 1990년대 불스 왕조도 새삼 재조명받고 있다.

[앤드원]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마이클 조던에 대해 이야기해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조던은 과연 무엇을 바탕으로 역대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을까? 다큐멘터리에는 언급되지 않은 몇 가지 일화와 코멘트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1) 언더독 정신: 아무도 몰랐던 유망주

마이클 조던은 NBA 역사상 최고의 승자로 기억되고 있다. 사실 NBA뿐만 아니라 전세계 스포츠 역사를 통틀어서도 조던에 견줄만한 ‘위너’는 거의 없었다. 조던은 항상 스포트라이트 아래 있었으며, 그 가운데 위대한 승리를 쌓아갔다. 마이클 조던이 NBA에서 걸어온 길은 화려함 그 자체였다.

그렇다면 조던은 항상 승리자였을까? 사실 그렇지 않다. 정말 어울리지 않게도, 조던의 농구 인생은 실패와 함께 시작됐다. 그는 언더독이었다. 농구 커리어 초창기의 실패는 조던에게 언더독 정신과 불굴의 승부욕을 안겨줬다.

<더 라스트 댄스>를 연출한 감독 제이슨 헤어의 말을 잠시 들어보자.

“마이클 조던의 고교 2학년 시절부터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입학을 선언한 고교 졸업반 시절까지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하나의 다큐멘터리로 만들어도 충분할 정도로 흥미롭고 의미가 있다. 어린 아이들에게 엄청난 영감을 주는 ‘성경’ 같은 콘텐츠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더 라스트 댄스>를 제작하면서 그 시절의 구체적인 이야기는 불가피하게 압축하고 생략해야 했다.”

조던이 고교 시절에 농구부에서 잘렸고, 이것이 조던에게 엄청난 동기부여가 됐다는 에피소드는 팬들 사이에서 매우 유명하다. <더 라스트 댄스>에서도 이 부분에 대해서 언급이 된 바 있다.

그리고 이와 관련한 에피소드가 좀 더 있다. ‘언더독’ 마이클 조던이 알을 깨고 주목을 받기 시작할 때의 이야기다.

고등학교 졸업을 불과 1-2년 앞둔 시점까지 조던은 미국은커녕 노스캐롤라이나 주에서도 주목받지 못하는 유망주였다. 조던은 고교 3학년(주니어) 시즌이 끝난 후 ‘스트릿 앤 스미스 매거진’이 발표한 전미 고교 유망주 탑 600인 랭킹에 아예 이름도 올리지 못했으며, 심지어 노스캐롤라이나 고교 3학년 탑 20 랭킹에도 포함되지 못했다.

하지만 3학년이 끝난 직후 열린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주최 농구 캠프에서 반전이 찾아온다. 주요 관계자들이 조던의 기량을 확인한 후 감탄을 금치 못하며 그를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관계자 중에는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의 딘 스미스 감독과 로이 윌리엄스 코치도 있었다.

“당시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의 코치였던 로이 윌리엄스(현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감독)가 그 캠프에 대해 이야기해준 적이 있다. 윌리엄스에 따르면 그 캠프에서 조던은 모두를 압살해버렸다. 윌리엄스와 함께 조던의 플레이를 본 딘 스미스 감독이 윌리엄스에게 ‘저 친구는 (스카우터들의 주목을 곧바로 받을 것이기 때문에) 다른 캠프에 절대 보내면 안 되겠다’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제이슨 헤어 감독의 말이다.

 

유소년 캠프에서 조던의 재능을 목격한 사람은 로이 윌리엄스 코치와 딘 스미스 감독뿐만이 아니었다. 1980년대 ‘배드보이즈’ 디트로이트에서 코치를 맡았던 브랜던 말론(<더 라스트 댄스>에도 인터뷰이로 출연한 바 있다)은 당시 시라큐스 대학의 코치인 동시에 ‘파이브-스타’라는 유망주 캠프에서 조던을 직접 가르친 지도자였는데, 그 역시 조던과 관련한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하나 들려줬다.

당시 ‘파이브-스타’ 캠프는 픽업 게임을 위한 드래프트를 먼저 진행한 후에 본격적으로 시작되곤 했다. 1년 전 캠프에서 픽업 게임 토너먼트 우승을 차지한 팀은 브랜던 말론이 이끄는 팀이었다.

하지만 당시 말론은 개인 사정으로 인해 캠프에 예정보다 늦게 합류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때문에 다른 코치에게 드래프트를 맡기고 캠프 현장을 뒤늦게 찾았다. 드래프트를 맡기면서 그 코치에게 말론은 이렇게 신신당부했다고 한다.

“작년에 우승했던 멤버를 그대로 뽑아줘.”

하지만 말론을 대신해 드래프트에 나선 코치는 1년 전의 우승 멤버 1명 대신 마이클 조던을 지명한다. 뒤늦게 캠프에 합류해 이 사실을 안 말론은 영문을 모른 채 코치에게 분노했다.

“도대체 마이클 조던이라는 놈이 누구야?”

그러자 그 코치가 이렇게 답했다.

“절 믿어보세요. 나중엔 함박웃음을 지으실 겁니다.”

코치의 말 대로였다. 캠프 첫 주에 조던은 곧바로 주간 MVP를 차지했다. 누가 봐도 당시 캠프 최고의 선수는 조던이었다. 고교 농구부에서 잘렸던, 아무도 이름조차 모르는 보잘 것 없는 유망주가 전미 농구 관계자들이 주목하는 유소년 캠프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는 선수로 탈바꿈한 것이다.

이 같은 대반전의 중심에는 피나는 노력으로 기량을 갈고 닦으며 칼을 갈았던 조던의 ‘언더독 마인드’가 있었다. 여기에 불과 2학년부터 3학년까지 불과 1년 사이에 15cm가 자라는 행운까지 더해지면서 조던은 농구선수로서 완전히 다른 미래를 열 수 있었다.

이 언더독 정신은 훗날 프로에서도 조던을 이끄는 강인한 승부욕의 원천으로 자리잡는다. <더 라스트 댄스>에서도 소개됐듯 조던은 상대 팀 선수나 감독이 자신을 무시하거나 조롱하는 모습을 보이면 이것을 끝까지 마음에 담아두고 복수하는 식으로 스스로 동기부여를 해갔다. “날 무시하고 조롱할 정도로 내가 너보다 아래에 있다고 생각한다면 보란 듯이 깨부숴주겠다.” 조던이 자신에게 끊임없이 속삭였던 이야기였고 이것은 고교 시절부터 그가 가져온 ‘언더독 마인드’와 일치했다.

 

2) 무모함을 극복하다: 농구에서 야구로, 야구에서 농구로

1995년 여름 마이클 조던은 생애 최대의 도전을 시작한다. 농구선수의 몸을 다시 만드는 것이었다.

1993년 파이널에서 피닉스를 꺾고 리그 3연패를 달성한 후, 조던은 동기부여 문제와 아버지의 죽음에 의한 상처로 전격 은퇴를 선언해 전세계를 놀라게 만든다. 하지만 조던이 코트로 다시 돌아오는 데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야구에 도전했던 조던은 18개월 만에 코트 복귀를 선언하며 다시 시카고 유니폼을 입었다.

하지만 농구 유니폼을 벗고 1년 넘게 야구에만 전념해온 조던이 갑자기 코트에서 전성기의 모습을 보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메디슨스퀘어가든에서 55점을 쏟아 붓는 등 복귀 후 치른 정규시즌 17경기에서 평균 26.9점을 쏟아 부으며 ‘조던은 조던’이라는 평가가 나오긴 했지만, 조던의 개인 트레이너 팀 그로버의 눈에는 불안한 것이 많았다.

“나처럼 조던을 잘 아는 사람의 눈에는 이전과는 미묘하게 다른 조던의 플레이가 보였다. 아마 일반 팬들은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 눈에는 조던이 스텝을 밟는 모습, 컷인하는 동작 등이 이전까지 보여주던 수준이 아니었음이 보였다.” 팀 그로버의 말이다.

야구를 위한 몸을 만들어온 조던의 효율이 떨어진 것은 사실이었다. 몸 상태의 차이는 가장 치열한 플레이오프 무대에 영향을 끼쳤다. 결국 1995년 플레이오프에서 시카고는 올랜도에 패하며 동부 준결승에서 무릎을 꿇고 만다.

올랜도에 플레이오프 시리즈 마지막 경기를 패한 후 조던은 “조만간 다시 봅시다(See you, soon)”라고 말하며 경기장을 떠나는 개인 트레이너 팀 그로버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뇨. 내일 봅시다.(No. See you tomorrow.)”

 

다음날부터 조던은 무모한 도전을 시작한다. 야구선수의 몸을 다시 농구선수의 몸으로 완벽히 되돌리는 작업이었다.

당시 조던의 체중은 233파운드(105.6kg)까지 늘어나 있었다. 야구에 필요한 부위의 근육을 크게 만들면서 몸을 불린 탓이었다. 1차 은퇴 전까지만 해도 조던은 213파운드(96.6kg)에서 218파운드(98.8kg)의 체중을 유지하고 있었다. 다시 몸을 바꿔야 했다 .감량은 물론 농구에 불필요한 근육의 크기도 다시 줄여가야 했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팀 그로버 트레이너는 조던에게 상당한 우려를 표출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농구선수의 몸을 야구선수의 몸으로 바꿨다가 다시 농구선수의 몸으로 바꾸기엔 너무 짧은 기간이다. 이전의 마이클 조던의 몸으로 돌아가기엔 시간이 부족하다. 당신은 최고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이 아닌가. 지금부터 몸을 잘 바꾸면 리그 상위 20% 정도의 선수는 될 수 있을 것이다. 상위 10%도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은퇴 이전 같은 수준으로 당장 돌아가는 것은 힘들다고 본다. 당신은 지금 그냥 동네 코트에서 뛰는 게 아니다. 최고 중의 최고들만 모이는 무대에서 뛰는 것이다.” 그로버가 조던에게 실제로 했던 말이다.

하지만 결과는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다. 조던은 1995년 여름에 영화 ‘스페이스 잼’을 촬영하는 와중에도 틈틈이 시간을 내 훈련에 매진했다. 촬영 현장에 만들어진 임시 체육관인 ‘조던 돔’에 뛰어난 선수들을 초청해 픽업 게임을 하며 그들의 플레이스타일을 확인하고 몸 상태를 끌어올렸다.

그렇게 시작된 1995-1996시즌은 지금도 시카고 불스 역사상 최고의 시즌으로 남아 있다. 정규시즌 72승 10패라는 대기록을 세운 시카고는 플레이오프에서도 승승장구하며 3년 만에 우승 타이틀을 되찾아 왔다. 조던은 정규시즌 MVP, 올스타전 MVP, 파이널 MVP를 동시에 석권했다. 이 시즌 조던의 평균 기록은 30.4점 6.6리바운드 4.3어시스트였다. 조던은 무모했던 도전마저 성공하며 다시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시카고 왕조의 두 번째 3연패가 더 의미 있게 다가오는 이유다.

 

3) 행동으로 보여주는 제왕적 리더십: 동전의 양면

리더십에는 정답이 없다. 리더의 성향, 동료들의 성향, 시대적 분위기에 따라 리더십도 달라질 수 있다.

<더 라스트 댄스> 방영 이후 조던의 리더십이 새삼 다시 화제가 됐다. 훈련 중에 팀 동료들을 극단적인 공포 상태로 몰아가며 쉬지 않고 압박을 주는 조던의 리더십 스타일에 대한 갑론을박이 펼쳐졌다. 조던의 방식이 다소 과하다는 비판이 일각에서 나오기도 했다.

일단 조던의 제왕적인 리더십 스타일이 꽤 많은 주변인들에게 상처를 준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는 주변에서 조던을 지켜본 이들도 어느 정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시카고 왕조에서 필 잭슨 감독을 보좌한 지도자이자 트라이앵글 오펜스의 대가로 불리는 텍스 윈터 코치는 2004년 발간된 한 책에서 조던의 리더십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남겼다.

“나는 조던이 동료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랐다고 생각한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것만큼은 확실하다. 조던이 과거에 함께 뛰었던 수많은 선수들은 아마 마음 속으로 조던이 자신을 소외시켰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조던에게 받은 대우에 대해 여전히 분개하고 있을 것이다.”

「조던 룰(Jordan Rules)」의 저자인 샘 스미스 시카고 트리뷴 기자에 따르면 첫 번째 3연패 시절 핵심 멤버였던 호레이스 그랜트는 다소 황당한 일을 당하기도 했다.

경기가 끝난 후 시카고 선수들이 팀 비행기에 탑승했는데, 갑자기 조던이 호레이스 그랜트를 자신과 멀리 앉게 했다고 한다. 이유는 단순했다. 그날 그랜트가 경기에서 부진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조던은 동료들에게 이렇게 외쳤다.

“저 놈에게 먹을 거 주지마. 쟤는 먹을 자격이 없어!”

물론 조던의 리더십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동료들도 많았다. 스티브 커와 B.J. 암스트롱이었다.

시카고의 두 번째 3연패 멤버였던 스티브 커 골든스테이트 감독은 지난해 11월 출연한 ‘더 링어’ 팟캐스트 방송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조던은 나를 더 좋은 선수로 만들어준 리더였다. ‘두려워 하지마. 계속 맞서 싸워야 해’라고 메시지를 던져주곤 했다. 조던 본인부터 실패가 가져다줄 상처와 오명 따위 두려워하지 않았다.”

“맞다. 조던은 훈련 중에 잔소리를 하며 동료들을 괴롭히곤 했다. 훈련 중에 트래시 토크를 하며 동료들을 테스트했다. 하지만 조던이 그렇게 했던 이유가 명백히 있었다. 조던은 동료들이 훈련 중에 듣는 트래시 토크를 이겨내지 못한다면, 플레이오프에서 마주할 압박감도 절대 이겨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시카고의 첫 번째 3연패 멤버였던 B.J. 암스트롱은 이렇게 말했다.

“모두가 리더가 되고 싶어 한다. 하지만 리더가 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먼저 행동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이 따라오게 만드는 것이다.”

“조던은 자신이 하지 않는 것을 동료들에게 요구한 적은 결코 없었다. 그리고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하나 더 있다. 조던의 머리 속에 오직 한 가지 화두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 화두는 승리였다. 조던은 그저 승리를 원했고 그걸 위해 동료들을 채찍질했다. 승리 외에 다른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조던은 이기길 원했다.”

 

조던 본인의 생각은 어땠을까? 일단 그는 자신의 리더십 스타일에 장단이 있음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특히 스티브 커와 훈련 중에 벌인 다툼과 ‘주먹질 사건’은 조던으로 하여금 스스로를 반성하게 만든 계기가 됐다. 이후 조던은 동료들을 향한 행동과 발언의 수위를 낮춰가며 더 좋은 리더가 되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스스로를 반성하며 내가 멍청한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동료들을 좀 더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동료들의 부족한 모습을 보며) 나 자신에게 몰아치는 감정을 잘 다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 마음 속에서 그걸 다루는 것이 필요했다.” 스티브 커와의 주먹질 사건을 되돌아보며 조던이 한 말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조던의 리더십은 결국 8년 동안 두 번의 3연패, 6번의 우승이라는 역사적인 업적으로 이어졌다. 물론 모든 것을 결과론적인 시각에서 해석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다만 조던의 리더십에 단점만 있었다면 시카고는 결코 왕조를 세우지 못했을 것이다. 먼저 행동하고, 높은 기준을 가지고 동료들을 채찍질해 그들에게서 최고의 결과물을 끌어내는 리더십을 통해 조던은 시카고를 더 위대한 팀으로 만들었다. 동전의 양면과도 같았던 제왕적 리더십 역시 조던을 역대 최고의 선수로 만든 요인이라고 볼 수 있는 이유다.

 

사진 제공 = 로이터/뉴스1

 

이동환 기자 ldh2305@rookie.co.kr

<저작권자 © ROOKIE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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