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원석연 기자] Dear.

현지 날짜로 2006년 4월 30일, LA의 밤거리는 온통 보라색과 노란색으로 물들었다. 직전 시즌 플레이오프 탈락이라는 충격적인 성적표를 받아들였던 LA 레이커스가 스티브 내쉬의 피닉스 선즈를 상대로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연장 접전 끝 통쾌한 역전승을 거뒀기 때문. LA의 모든 TV에서는 밤새도록 레이커스의 경기 하이라이트가 끊임없이 재방송됐다.

그리고 이튿날 새벽 캘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의 한 분만실, 모든 LA 시민의 축복 속에서 한 아이가 세상을 만났다. 신생아의 이름은 지아나 마리아-오노어 브라이언트. 전날 밤 스테이플스센터에서 프랜차이즈 역사에 길이 남을 버저비터 위닝샷을 터뜨린 코비 브라이언트의 둘째 딸이었다.

 

‘나니’ 나탈리아, ‘지지’ 지아나, ‘비비’ 비앙카, ‘코코’ 카프리. 

그 중에서도 둘째 지지는 코비의 네 자매 중 가장 아버지를 닮은 딸이었다. 농구를 좋아했지만, 배구와 영화도 그만큼 좋아했던 17살 맏언니 나니와 달리 13살 지지는 오직 농구뿐이었다. 코트 위에서 투쟁심, 새벽부터 체육관에 나서는 근면함, 경기가 안 풀리면 유니폼을 깨무는 습관까지. 사람들은 코비를 쏙 빼닮은 그녀를 ‘맘바’와 ‘마마시타(Mamacita, 매력적인 예쁜 여자라는 뜻의 스페인어)’를 섞어 ‘맘바시타’라 불렀다.

지지의 투쟁심은 코트 안팎을 가리지 않았다. 3년 전, 코비 가족이 디즈니랜드에 놀러 갔을 때의 일이다. 코비를 알아본 팬들이 지나가는 그를 보며 외쳤다. 

“GOAT!(Greatest Of All Time) 코비! 당신은 GOAT야!” 

이를 들은 지지가 미간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그만! 우리 아빠는 염소(Goat)가 아니야!” 코비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사랑스러운 딸에게 말했다. “지지, 그 GOAT가 아닌 것 같은데?”

그로부터 1년 뒤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지지와 함께 경기를 보고 있던 코비에게 한 팬이 다가와 말했다. “코비, 당신은 아들을 가져야만 해. 그것이 농구에 유산을 남기고 전통을 이어갈 길이야.” 이를 곁에서 듣고 있던 11살 지지가 웃으며 얘기했다.

“내가 할게요. 그게 꼭 아들이 필요한 일인가요? 내가 하면 되잖아요!” 

 

코비와 지아나는 서로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였다. 코비는 지아나에게 코트와 농구공 그리고 세상을 선물했고, 지아나는 코비에게 열정을 선물했다. 실제로 2016년 은퇴 후, 코비는 농구를 여전히 사랑했지만, 그보다 더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잠시 농구와 떨어져 있었다. 지지는 그런 코비를 다시 NBA로 데려왔다. 

이제 막 농구에 눈을 뜬 지지는 아빠와 농구를 보고 싶었다. 그녀는 코비에게 리그패스가 갖고 싶다고 떼썼고, 그 뒤로 부녀는 매일 밤 NBA 경기를 챙겨 보기 시작했다. 지아나는 아빠와 함께 농구를 보며 WNBA 선수의 꿈을 키워갔다. 코비는 그런 지지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를 가르치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에요.” 지난해 9월, 코비가 한 인터뷰에서 잔뜩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마치 도화지 위에 그림을 그리는 것 같죠. 11살 때부터 지지를 가르쳤는데, 2년이 지난 지금은 13살이 돼서 페이더웨이, 업앤언더, 스핀 무브를 이젠 제법 정교하게 한다니까요? 우리는 6년짜리 훈련계획을 세웠는데, 지금은 그중 2년째예요. 기초적인 것들을 배우고 있는데 예를 들어 스크린을 타는 법이나 수비를 예측하는 법… 모두 놀라운 일들이죠.” 

그러나 애석하게도 코비와 지지의 6년짜리 훈련계획표는 끝내 마지막 장을 보지 못했다. 2020년 1월 27일, 농구를 너무도 사랑했던 이들 부녀는 헬리콥터 추락 사고로 허망하게 세상을 떴다. 

그들의 목적지는 체육관, 농구를 하러 가던 길이었다.

 

사진 = 로이터/뉴스1 제공, 코비 브라이언트 인스타그램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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