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원석연 기자] 지난해를 강타한 신조어 중 ‘성장캐’라는 말이 있다. 처음부터 완벽한 캐릭터가 아닌 천천히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재미가 있는 캐릭터를 일컫는다. 프로스포츠에서 ‘성장캐’는 주로 약팀에서 나온다. 리빌딩 과정을 거치는 약팀이 유망주들에게 마음껏 출전 시간을 부여하면서, 선수들이 자연스럽게 성장해가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올시즌 WKBL 최고의 ‘성장캐’는 누구일까. 아이러니하게도 그 주인공은 지난해까지 통합 6연패를 차지하고 올시즌도 우승을 노리고 있는 리그 ‘최강팀’ 우리은행 위비에 있다. <루키더바스켓> 2월호 ‘더 스타’의 주인공. 데뷔 후 최고 영광의 시대를 보내고 있는 두 성장캐, 김소니아와 박다정이다. (모든 기록은 1월 26일 기준)

해당 기사는 <루키 더 바스켓> 2019년 2월호에 게재된 기사를 추가/각색했습니다.

“우리는 케미스트리가 있어요.”

올시즌 우리은행의 식스맨으로 활약 중인 김소니아와 박다정은 93년생 동갑내기 친구다. 그러나 각자 맡은 임무는 다르다. 포워드 김소니아는 골밑에서 리바운드를 사수하고, 슈터 박다정은 외곽에서 3점슛을 지원한다. 오히려 서로 다른 위치에서 철저히 다른 역할을 수행한 덕분일까.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우리는 케미스트리가 있다”고 말한다. 

이들의 케미스트리는 지난해 여름 탄생했다. 삼성생명에서 우리은행으로 이적한 박다정, 그리고 5년 만에 루마니아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김소니아는 지난해 여름 비시즌 훈련을 함께했다. 

농구 인생의 전환점을 맞은 두 선수 모두 동기부여가 확실했던 만큼, 훈련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또한 팀의 주축 중 임영희, 박혜진, 최은실 등이 아시안게임과 FIBA 월드컵 출전으로 여름을 통째로 비우는 바람에 김소니아와 박다정은 위성우 감독의 혹독하리만큼 뜨거운 관심을 한 몸에 오롯이 받을 수 있었다.

본격적으로 케미스트리가 싹 튼 때는 지난해 9월 일본 전지훈련 때. 주축 선수들이 팀을 비운 상황. 김소니아와 박다정은 일본팀과 연습 경기에서 호흡을 맞췄고, 이제는 눈빛만 봐도 마음을 아는 사이가 됐다고.

김소니아 : “다정이가 외곽에서 공을 잡으면 제가 눈빛으로 말해요. ‘다정아, 그냥 쏴! 내가 리바운드 잡아 줄게’라고요.”

박다정 : “맞아요. 든든하게 리바운드를 잡아줄 사람이 있다는 생각이 들면 슈터는 마음이 편해지거든요. 소니아가 그래요.”

 

스페셜 리스트

김소니아의 키는 176cm다. 국내 최장신 센터 박지수(196cm)는 물론 김소담(186cm), 곽주영(185cm), 배혜윤(182cm) 등 타 팀의 빅맨들과 비교했을 때 한참 작은 신장. 그러나 놀랍게도 그는 올시즌 국내선수만 뛰는 2쿼터 평균 3.74개의 리바운드를 잡아내며 이 부문 리그 2위에 올라있다(1위 김한별 3.76개). 

작은 키에도 이런 활약을 펼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김소니아는 유럽에서 뛰던 시절 경험했던 3x3 농구를 첫 번째로 꼽았다. 

“3x3을 많이 뛴 것이 큰 도움이 됐어요. 3x3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빅맨과 매치업하게 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러면서 빅맨을 수비하는 법을 배웠어요. 마음가짐도 중요한 것 같아요. ‘저 공을 무조건 잡아야 해’라고 생각하면서 공을 향해 달려들면 더 높게 뛰어져요.”

여기에 한 가지 더. 김소니아는 매일매일 자신만의 ‘오답 노트’를 적는다. 오답 노트에는 여러 가지 내용이 들어있다고. 

“그날 경기에서 못한 부분이나 감독님과 코치님께 지적을 받은 것이 있으면 매일 그것을 노트에 적어요. 경기 후 혼자 노트를 쓰면서 그 순간을 돌아봐요. 그러면 다음에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일이 줄어요.”

김소니아가 리바운드로 골밑을 지배하는 ‘리바운드 스페셜 리스트’라면, 박다정은 ‘3점슛 스페셜 리스트’다. 지난 2018년 12월 2일부터 2019년 1월 18일까지 13경기 연속 3점슛 성공을 기록하며 올시즌 리그에서 세 번째로 긴 연속 경기 3점슛 성공 기록을 세웠다. 효율 또한 만점이다. 시즌 3점슛 성공률은 46.2%로 슛 시도 횟수가 부족한 탓에 아직 규정 순위에 들지 못했으나 만약 진입하게 된다면 압도적인 리그 1위 기록이다. 

“아무래도 언니들이 수비수를 끌고 가다 보니까, 저한테 오픈 찬스가 많이 나서 3점슛 성공률이 높아진 거 같아요. 슛에 자신이 있기는 해요. 슛 덕분에 프로에 들어올 수 있었으니까요. 다른 것보다는 슛을 그래도 잘하는 것 같아요. 우리은행에 오고 나서 감독님께 교정을 받고 더 좋아진 것도 있어요.”

 

‘팀 우리은행’

김정은이 지난 시즌 우리은행에 처음 왔을 때 일화다. 올해로 프로 14년 차를 맞은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김정은에게도 우리은행의 비시즌 훈련은 충격으로 다가왔을 정도로 혹독했다. 하루는 훈련이 너무 힘들었던 김정은이 국가대표에 차출돼 떠나 있는 임영희에게 “언니는 어떻게 6년을 버텼느냐”고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돌아온 임영희의 현답.

“내일 생각하지 말고 오늘 하루를 버티다 보면,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어느새 5년, 6년이 가 있더라.”

에피소드를 전해주자 김소니아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비시즌 진짜 힘들었어요”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유럽에서 5년을 뛰었잖아요. 그런데 이런 피지컬 트레이닝은 겪어본 적이 없어요. 훈련을 마치고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알이 너무 많이 배겨서 뒤척거릴 때마다 아파서 잠이 깰 정도였어요.”

그 때 박다정이 발끈했다. 

“(김)소니아는 비시즌 중간에 들어와서 훈련을 반밖에 안 했어요. 처음부터 다했으면 정말 죽었을지도 몰라요(웃음). 저는 그때 하루 버티는 것도 힘들었어요. 오전만 버티자, 오후만 버티자, 야간만 버티자, 삼분할로 나눠서 버텼어요.”

잠자리마저 설치게 한 위성우 감독이 미운 적은 없었을까.

김소니아 : “유럽에서 여러 리그를 뛰면서 많은 감독님을 만나봤어요. 거기도 똑같아요. 감독님들은 다 화 많이 내요. 물론 여태껏 만나본 감독님 중에 우리 감독님처럼 화 많이 내는 감독님은 없었어요. 그래도 저는 너무 좋아요. 유럽에서는 화 안 내고, 말 안 걸고 신경 안 쓰는 감독님도 많았어요. 우리 감독님은 화내면서 잘못한 것들 고쳐 주시잖아요. 그게 다 관심이에요.”

박다정 : “이전까지 별 볼 일 없던 제가 여기 우리은행에 와서 이렇게 기회를 받고, 다른 선수가 됐잖아요? 저한테는 정말 고마운 분이죠. 그리고 길을 열어 주신 삼성생명 임근배 감독님도 정말 감사하게 생각해요.”

②편에서 계속... 

사진 = 박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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