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원석연 기자] 평행이론일까.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우리은행 유니폼을 입고 신한은행을 상대로 데뷔해 첫 경기에서 7점을 올린 선수. 박지현, 그리고 박혜진의 이야기다.

지난 8일 열렸던 2018~2019 WKBL 신입선수 선발회에서 4.8%의 확률을 뚫고 우리은행 유니폼을 입은 슈퍼 루키 박지현이 입단 후 첫 경기에서 바로 데뷔전을 치렀다. 

16일 인천 도원체육관에서 열린 우리은행 2018-2019 여자프로농구 인천 신한은행 에스버드와 경기에서 2쿼터 교체로 출전한 그는 10분간 7점 1어시스트 1스틸을 기록했다. 우리은행은 72-53으로 승리했다. 

 

뛴 시간은 많지 않았으나 임팩트는 확실했다. 

박지현은 2쿼터 종료 5분 27초를 남기고 김정은과 교체돼 들어갔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그는 이 순간을 두고 "준비하긴 했는데, 갑작스럽게 코트 위에 서니까 몸이 순간적으로 굳었다. 공격보다는 수비로 몸을 좀 풀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돌이켰다. 

그렇게 코트 위에 선 박지현의 프로 첫 기록은 스틸이었다. 공교롭게도 그가 공을 가로챈 선수는 2012-13시즌 신인왕 출신의 양지영. 이후 박지현은 곽주영을 디나이 디펜스로 막아내며 상대 실책을 유도하는 등 수비에서 인상깊은 모습을 보였다. 

3쿼터 벤치를 지킨 박지현은 4쿼터 종료 5분 36초를 남기고 다시 투입됐다. 교체 시 점수는 58-38로 이미 승부는 우리은행에게 크게 기울어진 상황. 위성우 감독은 2쿼터와 달리 적극적인 공격을 주문했다. 

박지현은 투입 후 1분여 만에 데뷔 첫 득점 기회를 잡았다. 외곽에서 크리스탈 토마스의 패스를 건네받은 뒤 골밑 돌파를 통해 상대 파울을 유도해 자유투 라인에 섰다. 2구 모두 깔끔하게 성공. 박지현의 프로 첫 득점은 그렇게 자유투로 기록됐다. 이후 박지현은 3점슛과 속공 득점을 통해 5점을 더 추가했다. 데뷔전 기록 7점 1어시스트 1스틸.

박지현이 자유투로 첫 득점을 올리는 순간, 중계 카메라에는 박혜진의 모습이 잡혔다. 벤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박혜진은 박지현의 자유투가 림을 통과하자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박수로 후배를 격려했다. 박혜진은 이날 10년 전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우리은행 유니폼을 입고 신한은행을 상대로 데뷔해 첫 경기에서 7점을 올린 선수. 2018-19시즌 박지현, 그리고 2008-09시즌의 박혜진.

지금으로부터 꼭 10년 전인 2008-09 드래프트에서 1순위로 우리은행에 입단한 박혜진은 2008년 11월 14일 당시 ‘레알 신한’으로 불리던 신한은행을 상대로 데뷔했다. 잔인하게도 그의 매치업 상대는 신한은행의 ‘수비 스페셜리스트’ 진미정. 박혜진은 데뷔전을 7점(1/7) 2리바운드 2어시스트 1스틸로 마쳤다.

그렇게 프로 무대에 첫발을 내디딘 박혜진은 이후 7연패를 겪고 나서야 프로에서 첫 승리의 기쁨을 맛볼 수 있었다. 당해 우리은행은 7승 33패로 리그 꼴찌에 그쳤고, 데뷔전 상대였던 신한은행은 37승 3패로 92.5%라는 당대 최고 승률 기록을 세우며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신인왕을 차지하긴 했으나 박혜진에게 데뷔 시즌, 그리고 신한은행은 아픈 기억이었다. 

그리고 정확히 8년 뒤, 이 기록은 박혜진의 손에 의해 깨진다. 2016-17시즌 우리은행은 위성우 감독과 ‘MVP 박혜진’의 활약으로 정규시즌에서 33승 2패, 무려 94.28%라는 전인미답의 승률을 기록하며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16일 경기 전 라커룸에서 만난 위성우 감독은 “박지현의 데뷔는 오늘 경기가 크게 기울지 않는 이상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박혜진은 전반전에만 11점 5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일찌감치 승부를 결정짓고 후배 박지현의 데뷔 무대를 직접 조성했다. 박혜진이 버티고 있는 우리은행에게 신한은행은 더 이상 '아픈 기억'이 아니었다. 박지현은 10년 전 무거운 마음으로 데뷔했던 박혜진과 달리 20점 차가 넘게 벌어진 경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던 박지현의 데뷔전에는 10년 전 데뷔해 ‘만년 꼴찌’ 우리은행을 ‘역대 최고 승률 팀’으로 이끈 박혜진의 공로가 숨어있었다. 박지현 역시 경기 후 인터뷰에서 박혜진을 롤모델로 꼽으며 “배울 것이 정말 많은 선배”라고 화답했다. 

이날 밤, 위성우 감독과 박혜진 그리고 박지현은 여자프로농구에 또 하나의 스토리 라인을 작성했다.

사진 = 이현수 기자 stephen_hs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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