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에세이 ‘단편’(斷片/短篇)
| 마흔 일곱 살 양치기 소년의 멈춰진 시간
| 위성우 우리은행 감독

[루키=박진호 기자] 안산의 어느 상가 건물 2층의 한 식당. 왁자지껄한 활기가 분주하게 넘치던 그 곳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현관 귀퉁이에 이미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한 사내가 비좁게 몸을 기대고 있었다. 몇 차례 안면은 있었지만 딱히 대화를 따로 나눠보지는 않았던 그에게 걱정스레 입을 열었지만, 그는 대답할 힘도 없는 듯 손사레만 쳤다. 안으로 들어가라는 손짓. 그 모든 분야를 통틀어 술 잘하기로 유명한 농구계인데... 뜻밖의 인물을 지나쳐 약속된 자리로 향했다. 그에 대한 나의 명확한 첫 인상은 안산의 한 식당 현관인 것 같다.

기자라는 직업을 처음 선택할 때부터 가장 매력적인 것은 인터뷰였다. 경찰서 마와리(일본어로 방문, 경유, 순회 등의 뜻을 갖고 있다. 기자들에게 속칭 마와리는 배정받은 취재처를 돌면서 기사가 될 사항들을 체크하는 것을 말한다)로 범인들과 마주하지 않는 한, 인터뷰는 적어도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사람들과의 만남이자, 대다수의 대중들이 궁금해 하는 인물들을 대신 마주하는 특권이었다. 

하지만 제한된 시간으로 그들의 모든 것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하루하루 살찌우는 것 외에는 나이 먹는 것 밖에 하는 게 없으면서도 그 거울 속의 나조차도 스스로 이해하지 못하는 삶이기에, 다른 이를 간파하고 관통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최근에는 그 정보를 제대로 전달하는 가에 대한 회의도 들고 있다. 

만남의 시간을 종합해서 최선을 다해 적어내도 글은 결국 그의 단편(斷片)이다. 따라서 단편(短篇)일 수밖에 없다.

#1
사건 후 시간이 조금 지나, 그의 이름을 보도 자료에서 접했다. 감독이 됐다. 통합 6연패를 이끌었던 여자농구팀의 코치였던 그는 그 팀의 영구결번 선수 출신인 후배 코치와 함께 다른 구단의 감독으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

‘아... 술 마시면 죽는 사람?’

내게 그는 그랬다. 묘한 동질감이 있었다. 입대하기도 전이었던 20대 초반에 뜬금없이 알코올성 지방간 진단을 받았던 나는 언젠가부터 술자리가 곤욕이었다. 친구들과의 모임에서도 술 없이 취한 것처럼 놀 줄 알아야 했다. 술을 입에 안 대면서 그 자리를 끝까지 지키는 게 얼마나 힘든지, 해보지 않은 이들은 모른다. 

“위 코치는 왜 안 보여? 벌써 갔어? 두 잔 밖에 안했는데?”

당시에는 그들과의 술자리가 종종 있었다. 청탁이나 기묘한 접대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랬다면 이 지면을 빌어 잘난 체 글을 늘어놓지도 못했을 터. ‘공식(公式)’이라는 단어를 붙인 자리에서 할 수 없던 이야기들을 가볍게 주고받았고, 서로를 격려하는 일이 많았다. 그런 자리에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위성우 코치가 오랜만에 함께 했는데, 남들보다 한 2~30분 정도 늦었던 내가 도착했을 때에 그렇게 자리를 먼저 떠났다.

“나중에 감독을 하려면 술 마실 일, 술 없이 못 버틸 일들이 많을 텐데... 걱정이야.”

#2
얼마 전 그를 다시 만났다. 안산의 2층 식당에 힘겹게 몸을 기대고 있던 그를 이후의 시간은 6년 연속 우승을 이끈 명장으로 바꾸어 놓았다. 저녁시간이었지만 개화의 시기를 넘긴 계절은 여전히 휘영청 밝았고, 유니폼처럼 걸치던 정장을 벗어 놓은 그는 동네 구경나온 삼촌처럼 걸음이 가벼웠다.

어쩌면 그게 맞는지도 모른다. 그를 만난 신천은 그의 집에서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지척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나와 헤어질 때, 아내에게 전화해서 “돌아가는 길에 나 좀 태워가라”는 용기를 자랑했다. 남편들이 날로 작아지는 시대에 성공한 남자의 단편을 보는 것 같았다.

해가 저물기 시작하는 시간. 나이의 앞자리가 4로 시작하는 남자 둘이 만났지만, 술 한 잔 입에 대지 않는 이들이라 밥 먹고 커피를 마셨다. 무척 안 어울리는 그림이지만 이게 편하다.

#3
그는 최근 10년간 가장 많은 경기를 경험한 여자농구 지도자다. 코치와 감독을 거치며 12년 연속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12년 동안 리그의 마지막 날까지 경기를 했다는 이야기다. 우승 반지가 열 손가락을 다 채우고 넘친 만큼, 그의 노련함도 이전 같지 않다.

2012년 10월 12일 구리에서는 여자농구 2012-13시즌 개막전이 열렸다. 이 경기는 이전까지 만년 꼴찌로 추락했던 우리은행이 반란의 역사와 함께 절대 왕조를 새롭게 시작한 날이었고, 이전까지 ‘레알 신한은행’의 찬란한 역사를 함께했던 부장(副長)이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맨 앞머리에 꺼내놓은 날이었다.

‘최강팀’ 신한은행의 코치 시절, 가장 강력한 경쟁자였던 KDB생명을 서전의 상대로 맞이한 그는 ‘최약체’ 우리은행의 감독이 되어서도 상대를 집어삼켰고, 현재 별명이 된 ‘위대인’의 신화를 시작했다.

기억이 맞다면 그는 이날 경기에서 초반에 벤치 테크니컬 파울을 받았다. 지금도 여전히 벤치에서 아이돌 멤버 못지않은 화려한 몸 사위를 보여주는 그는 당시 6개 구단 최연소 감독이었고, 벤치에서 활어 이상으로 싱싱한 몸놀림을 자랑했다. 일찌감치 심판에게 제지를 받는 그를 보며 당시 경기장 1층에 있던 기자석에서는 웃음이 이어졌다. “WKBL에서 가장 테크니컬 파울을 많이 받은 임달식 감독의 보좌관 출신답다”는 말도 나왔다. 어쩌면 그 부분의 청출어람을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일 이후 6년간 그는 단 한 차례의 테크니컬 파울도 받지 않았다.

“저희 잘 했어요? 정신이 없어서 하나도 생각이 안 나요. 밖에서 볼 때는 좀 괜찮았나요? 아... 근데, 저 여기 앉으면 돼요?”

우승 후보 중 한 팀이자 대회 타이틀 스폰서였던 홈팀을 개막전에서 격파한 그의 경기 후 공식 인터뷰는 이렇게 시작했다. 참 서글서글하고 해맑아보였다. 

#4
“그때는 어떻게 그렇게 했나 몰라. 사실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거든. 아 진짜에요! 애들한테 물어봐요.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에요. 그런데 내가 생각해도 미친놈이 맞는 것 같아. 그때 그걸 어떻게 시켰지? 그런데 또 애들은 그걸 따라와 줬어요. 과정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고맙죠. 그걸 다 견디고 이겨서 여기까지 왔으니까요.”

서글서글하고 해맑아보였다고 했지만 그의 지도는 세상이 다 알 듯, 이런 단어와 거리가 멀다. 강도 높은 훈련을 타협 없이 진행했다. ‘길 가에 개가 부러웠다’는 선수들의 탄원이 있을 만큼 훈련에 자비는 없었다. 그와 우리은행의 코칭스태프는 ‘이 말이 이제 그만 언급되었으면 좋겠다’지만 어림없다. 그들이 농구계를 떠나는 날까지도 이 말은 회자될 것이다.

우리은행이 여름마다 찾는 전라남도 여수의 체력훈련은 지켜보기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힌다. 선수 한 명에게 말을 걸기조차 미안할 정도. 하지만 이런 과정을 거쳐 챔피언이 탄생했다. 노력이 우승으로 이어지자 ‘땀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진리가 우리은행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그가 예전만큼 선수들을 강하게 몰아붙이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깨달음을 얻은 선수들에 대한 믿음이다.

물론 예외도 있다. 비시즌 훈련과 달리, 휴가 기간의 자기 관리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 부호가 남아있다. 지난 해 모처럼 두 달의 휴가를 선사했던 그는 몇몇의 부실한 준비에 골머리를 앓았다. 뜻밖의 부상이 많이 나온 것 또한 대책 없이 너무 길었던 휴가에서 원인을 찾았다. 때문에 이 팀의 어린 선수들은 우승 확정 후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지금, 벌써 숙소에 들어와 기초적인 준비에 돌입했다.

“휴가가 끝난 건 아니에요. 월말에 우승 여행도 가니까요. 마냥 놀고 쉬는 게 아니라, 몸 관리를 도와주면서 쉴 수 있게 하는 거죠.”

선수들에 대한 동기부여도 확실했다. 김정은이 좋은 예다. 프로 데뷔 때부터 주목받았던 ‘에이스’ 김정은이 우승에 목말라 그를 찾았고, 한 여름 지옥이 펼쳐졌다. 우리은행은 운동량도 남달랐지만 정신적인 압박도 만만치 않았다. 당시 일본에서 본 우리은행의 캠프는 흡사 김정은에게 주어진 고난과 학대의 길 같았다. 오죽하면 계약서에 서명을 한 후 ‘김정은이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은 날이 없었을 것’이라는 말이 나왔을까? 첫 우승과 함께 챔피언전 MVP를 거머쥔 뒤 환하게 웃던 김정은에게 여름의 기억을 되짚게 하자 “정말 죽고 싶었다”는 답이 나왔다. 하지만 이면에서 그런 힘든 감정을 풀어줬던 것 역시 위 감독의 말 한 마디였다며, “감독님은 ‘밀당’의 고수이자 전형적인 ‘나쁜 남자’스타일”이라고 했다. 

“‘밀당’ 같은 소리하네. 몰라요, 난 그런 거. 우리 와이프한테 물어봐도 아니라고 할 텐데. 난 그냥 하던 대로 했는데, 자기 혼자 밀고 당겼나 보네...”

 #5
4월 중순의 잠실 학생체육관에는 그가 자주 출몰했다. 그는 이번 남자농구 챔피언결정전 잠실 경기를 모두 관람했다. 동네 구경 왔다는 게 그의 변. 운동 삼아 집에서 걸어 나와 ‘감독’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농구팬 위 씨’로 입장을 바꾼 것. 최고의 성적에도 불구하고 항상 자리의 부담과 싸워야 하는 그는 ‘감독’이라는 이름을 내려놓으면, 농구장에서 한 없이 즐거운 사람이다. 남자 농구를 관전할 때, 그리고 ‘박신자컵 서머리그’가 진행될 때, 그는 마냥 행복하다. “농구가 이렇게 재미있다”고 한다.

하지만 직업인으로 농구를 대하면 얼굴부터 무게와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지난 시즌 우리은행은 정규리그에서 KB에게 5라운드부터 내리 3연패를 당했다. 그는 이렇게 토로했다.

“경계성 장애가 있나 봐요.”

‘상대가 너무 잘해서 어쩔 수 없었다’며 마음을 편하게 먹고 침대에 누웠다가 문득 화가 나서 벌떡 일어나고, ‘내가 잘못해서 팀이 졌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답답하다가도 지나간 일이라며 다시 누웠는데, 경기 장면이 필름처럼 눈앞에서 돌아가 잠을 못 잤다며 멍한 표정으로 “죽겠다”고 했다. 일 년 내내 수많은 선수들을 괴롭힌 업보일지도... 

병인은 농구다. 농구 감독인 그에게 직업병과 같은 잔재들이다. 쉴 때도 농구와 분리되지 않는 그에게 코트 밖의 자유를 만끽하게 해줄 수 있는 것들은 없을까?

“뭐 할 거 같아요? 취미가 있어 보이긴 해요?”

취미에 대해 딱히 의견을 내지 못하던 그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아! 영화 자주 본다! 영화 많이 봐요! 이게 취미네”라고 돌연 반색했다. 최근에는 아내와 <지금 만나러 갑니다>를 보고 왔다고 한다. 영화관에 가 본 기억이 잘 떠오르지 않아, 자랑스레 말하는 그가 부러웠다. 괜찮다. 난 14년 전에 이 영화의 원작을 극장에서 봤으니까. 참으로 좋아했던 배우 다케우치 유코가 작품 후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남자 주인공과 결혼한 것은 불만이었다.

(주)소지섭, 손예진 주연으로 올해 개봉한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원작은 2004년 개봉했던 동명(いま、会いにゆきます)의 일본 작품이다. 이 작품의 여주인공을 맡았던 다케우치 유코는 이후, 남자 주인공이었던 나카무라 시도와 결혼했다. 그러나 16개월 만에 이혼했다.

그런데 이 영화... 뭔가 ‘위성우라는 남자’와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다. 안타까우면서도 가슴을 울리는 이 영화에 그도 눈물을 흘렸을까? 뚱한 표정으로 그가 말한다.

“아뇨. 왜 울어요?”

이제야 조금 그 답다.

#6
그는 정확히 현재에 산다. 과거에 집착하지 않으면서 철저히 미래지향적인 인물을 성공의 표본으로 삼는 일련의 분위기를 고려할 때, 그는 여기에 일치하지 않는 인물이다. 과거에 집착하지 않지만, 늘 미래를 조망하는 것도 아니다. 

<오만과 편견>의 작가 제인 오스틴이 소설 <맨스필드 파크>에서 ‘당신의 시계로 나를 비난하지 말라’고 한 것처럼, 그는 누군가의 시계에 휘둘리지 않는다. 현재가 가장 기쁘고 벅차며, 또한 현재가 가장 힘들고 고되다. 지극히 현실주의자다. 현재에 충실하기에 과거에 대한 망각도 빠르다. 하루의 절반을 망상으로 소비하는 내게 그는 퍽이나 빈틈없고 답답한 사람이다. 

우리는 그를 ‘양치기 소년’이라 불렀다. 

반 백 살의 나이를 눈앞에 두고 ‘소년’이라 불리는 것은 행운이다. 이솝우화 페리인덱스 210번의 주인공이 중년이 아닌 소년이기에, 그는 마흔 일곱 나이에도 ‘소년’이 될 수 있었다. 일 년 내 내 힘들다고 앓는 소리를 하는 1위 팀 감독이기에 ‘엄살의 표본’이자 ‘거짓말의 달인’이 됐다. 

하지만 그는 억울하다. 훈련과 시합 도중 극심한 두통에 주저앉을 때가 있을 만큼, 그리고 그 빈도가 조금씩 늘어 날만큼, 그의 근심과 고민은 항상 진짜였다. 누구의 고통이 더 큰 것인가를 객관화하기는 쉽지 않다. 맥길 통증 지수를 굳이 급할 필요도 없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게 닥친 고난이 가장 벅차다. 

“솔직히 그때는 힘들다는 말을 하면 안되는 게 맞는 거 같아.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편하게 했죠 뭐.”

감독을 맡은 후 2017-18시즌이 가장 힘들었다는 그는 바로 직전인 2016-17시즌에 대해서는 객관적으로나 주관적으로나 힘들다는 말을 할 수 없던 때라고 고백했다. 존쿠엘 존스라는 특급 외국인 선수가 (그의 표현을 그대로 한다면) 얻어 걸렸던 시즌. 우리은행은 한국 프로 스포츠 사상 역대 최고 성적을 올렸다. 하지만 그는 그때에도 힘들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거의 마지막 경기까지 1위 경쟁을 했던 2012-13시즌은 어땠을까?

“기억이 잘 안나요. 힘들었겠죠. 감독 처음 한 해인데... 힘들었을 거예요. 그런데 정말 생각이 안나요. 확실한 건 그 어느 때보다 이번이 제일 힘들었다는 거예요. 정말!”

힘든 일에 대한 유효기간만 짧다면 오죽 좋을까? 안타깝게도 그는 좋은 기억에 대한 보존 기한도 그리 길지가 않다. 우승 후 활짝 웃으며 “이 맛에 고생하는 것 같다. 헹가래 후 선수들한테 맞으면 아파도 행복하다”고 하지만, 그날 축승회 자리에서도 시간이 자정을 넘어가면 “하루가 지났네요. 이번 우승도 이제는 과거”라고 말한다. 고난도 기쁨도 여운의 길이가 길지 않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어쨌든 승부사로 살아야 하는 그에게는 단점보다 장점에 가깝다는 생각이다. 그렇기에 그의 시간은 항상 현재에 멈춰져 있다.

#7
잠시의 정적이 있었다. 입을 다문 그가 한참을 생각했다. 공백을 표정의 미학으로 만들어내던 그는 “아직은 특별히 없다”고 대답했다. 

아주 일상적인 질문. 승부의 세계에 살고 있는 이들에게 일 년 열 두 달 아무 때고 날아들 수 있는 질문. ‘목표’라는 것을 물어본 질문에 대한 답이다. ‘준비된 질문’이기에 충분히 ‘준비된 답’을 해줄 수도 있겠건만, 그는 진심 1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모르겠다”고 한다. 이제 막 다항식의 연산을 시작한 학생에게 미분과 적분을 물어보면 이런 반응일까?

‘나에게는 진심이고 남에게는 거짓말’이 되는 ‘양치기 소년, 위성우의 오묘한 문답시간’이 또다시 시작됐다. ‘통합 6연패를 하는 동안, 단 한 번도 시즌 전, 우승을 목표로 한 적이 없다’는 그가 이번에는 계획과 목표 자체에 대해 빈 칸을 만들어 두었다. 바라는 것은 오직 건강 하나라고 했다. 자신의 건강, 가족의 건강, 그리고 선수들의 건강이었다.

#8
목표는 결국 ‘지향하는 도착점’이다. 현재보다 더 높은 곳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오를 곳이 없는 이에게는 지키는 것이 당연한 목표다. 하지만 그는 이 당연함조차도 고개를 젓는다. “내려갈 각오는 항상 하고 있다”면서도 “그렇다고 쉽게 주저앉을 수는 없다”는 말을 몇 년 전부터 하고 있는 그에게 시간은 과거나 미래에 존재하는 것이 아닌 현재의 것이다. 1년을 주기로 시간의 터널을 그대로 왕복하고 있기에, 그에게 미래는 과거로 연결되는 환승구이고, 모든 것은 현재로 귀결된다. 그래서 이 멈춰진 시간에만 응답할 뿐, 그 뒤편에 존재하는 세계에 대해 ‘목표’라는 설정을 권태로워 하는지도 모른다. 

인기가 예전에 미치지 못한다는 고민을 안고 있지만, 여자농구 자체가 정체되고 퇴보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골든스테이트에는 전 재산을 못 걸어도 우리은행에는 걸 수 있다’는 말을 만들어 내며 승부의 불확실성을 지워버려, ‘재미없는 농구’의 주범처럼 각인된 ‘위성우와 그 일당들’은 “우리가 이겨서 재미없다면, 져도 재미없는 건 마찬가지”라며 여전히 자신들이 만든 세계를 지키고자 한다. 그들이 만든 공간에 새로운 출구를 내기 위한 다른 이들의 노력은 더욱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견고해보이던 경계에 조금씩 균열이 생기자, 그 역시 더 굳건한 방호벽을 구축하고자 한다.

안팎에서 가장 큰 위기라고 생각했던 지난 시즌. 그는 결국 방법을 찾아냈고, ‘수성의 위대함’을 보여줬다. ‘완성된 팀’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했고, 변화의 유연함도 보여줬다. 결과는 같았지만 과정은 사뭇 달랐다.

‘목표 없는 욕심쟁이’가 지키고자 하는 일정한 루틴. 지난 6년간 자신의 세계를 확고히 구축했던 중년의 양치기 소년이 만드는 촘촘한 거미줄과 이를 끊어내기 위한 다른 이들의 경쟁은 볼거리의 가치로 모자람이 없다. 

무더위와 수확의 시기가 지나고 난 후 추운 계절이 도래하면, 그가 다시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내 쉴 것이다. 지난 육 년 간 반복했던 푸념을 이번에도 반복하겠지. 그의 그런 고민은 분명 사실이고 현실이지만, 나는 다시 그의 앓는 소리를 ‘엄살’이라고 정리할 것이다. 길었던 시즌을 마치고 접어든 휴식기. 다음 계절을 앞두고 시작될 그의 엄살을 기대하며 당분간은 따뜻한 시절의 여유를 즐기자. 

해당 기사는 <루키 더 바스켓> 2018년 5월호에 게재된 기사를 추가/각색했습니다.

사진 = 박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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