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이학철 기자] 많은 고심 끝에 새해 첫 월간여신으로 선정된 김선신 아나운서(이하 호칭 생략)는 2011년부터 MBC스포츠플러스에서 활동하고 있는 베테랑 아나운서다. 학창시절에는 ‘경인교대 김태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던 그는 아나운서가 된 이후로는 통통 튀는 독특한 매력 덕분에 어느새 ‘선신병자’라는 다소 과격한 별명을 새로 획득했다. 

사실 야구팬들 사이에서 더 유명세를 떨치고 있긴 하지만 본인 스스로 ‘현실판 채소연’임을 주장하고 있는 만큼 그의 농구여신 선정에도 별다른 무리는 없을 것이다. 물론 역대 월간여신 최고령이며 유일한 유부녀 여신이기는 하다. 심지어 이제 곧 엄마가 된다!!! 

아무튼 지금부터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인 김태희와 선신병자라는 타이틀을 동시에 보유한 그의 매력 속으로 빠져보도록 하자.   

해당 기사는 <루키 더 바스켓> 2018년 2월호에 게재된 기사를 추가/각색했습니다. 

“우와~! 사진 진~짜 잘 찍으신다~ 대박!” 

언제나 그렇듯 인터뷰에 앞서 진행된 사진 촬영 시간. 촬영 중간중간 결과물을 확인한 김선신은 연신 감탄을 내뱉는다. 아무래도 본격적인 촬영 전 “점프볼 아니냐”고 물어봤던 게 미안했나 보다. 여신에게 칭찬 세례를 받은 편집장과 이현수 기자가 한층 더 열정적으로 셔터를 눌러대는 것 같았던 것은 기분 탓인 걸까. 뭐 사실 누구라도 저렇게 예쁜 여자가 칭찬해주면 신이 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어쨌든 이번 촬영 역시 그렇게 훈훈하게 마무리되었고 본격적인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안정적인 직업을 뿌리치고 뛰어든 아나운서의 길
김선신은 아나운서가 되기 전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했던 경력을 가지고 있다. 이미 학창시절부터 ‘경인교대 김태희’라 불릴 정도로 빼어난 미모를 자랑하던 그는 돌연 교사라는 직업을 관두고 아나운서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그렇기에 그 이유를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어머~ 그거 인터뷰 진짜 많이 했는데 안 보셨나봐요~! (웃음)” 

-_-;; 역시..첫 대답부터 심상치 않다. 이대로는 인터뷰 준비도 제대로 안 해가는 게으름뱅이 기자가 될 위기다. 혹시라도 오해할 독자들을 위해 잠시 변명하자면, 물론 다른 매체와의 인터뷰는 수없이 찾아봤다. 그러나 거기 적혀있는 대답을 Ctrl+C, Ctrl+V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필자가 인터뷰 준비를 열심히 했다는 증거(?)는 말미에 공개되니 독자들은 조금만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주길 바란다. 

“농담이에요~(웃음). 사실 교사라는 직업이 적성에 맞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어요. 지금 생각해봐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을 되게 좋아했었고 저 자신도 교사를 되게 하고 싶어 했었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문득 ‘혹시 내가 인생을 살면서 겁먹고 무서워서 도전하지 않았던 일들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원래 제가 대학교 때부터 방송 쪽에 관심이 많았는데 언론고시가 경쟁률이 심하잖아요. 그래서 제가 스스로 그 꿈을 접었던게 생각이 나더라고요. 문득 이렇게 교사만 하다 죽는 것은 내 인생에서 아쉬움이 많이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때부터 준비를 시작했죠.”

사실 말이야 쉽지, 교사라는 최고의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 아나운서 준비를 한다는 것은 보통 결심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미 굳은 결심을 한 그에게는 자신의 꿈을 향한 도전보다 가치 있는 것은 없었다. 

“지하철을 타고 학교에 출퇴근을 했거든요. 그 때도 저는 매일 제가 아나운서가 된 것처럼 지하철에서 혼자 막 멘트를 중얼중얼 거리면서 연습을 했었어요. 그리고 길거리를 다닐 때도 카메라 같은걸 들고 제가 현장에 나온 생방송 리포터라고 혼자 상상을 하고 막 연습을 했었어요. 그 정도로 아나운서가 너무 하고 싶었어요.”

이어 김선신은 “남들이 봤다면 정말 미쳤다고 생각했을 것”이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음.. 길거리를 지나가면서 혼자 카메라를 보고 중얼거리는 여자를 목격한다고 상상해보면 충분히 그럴만하다. 그러나 그런 간절함이 없었다면 아나운서라는 꿈에 도전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거기다 김선신에게는 넘어야 할 또 다른 산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결심에 반대하는 부모님을 설득하는 일. 그 어떤 부모라도 자식이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직업에 도전한다고 하면 당연히 반대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를 위해 김선신은 자신이 준비했던 필살기(?)를 꺼내들었고 결국 힘겹게 부모님을 설득하는데 성공했다. 

“제가 처음 그만둔다고 했을 때는 학교에서도 만류를 했었어요. 교장선생님이 아버지를 직접 부르셔서 설득을 좀 해달라고 부탁하실 정도였거든요. 그리고 부모님도 굉장히 반대가 심하셨는데 워낙 제가 의지가 굳건했고, 또 약간 믿는 구석이 있었어요. 제가 교사를 하면서 방학 때 아나운서 아카데미를 다녔는데 제가 아카데미 장학생이 된 거에요. 아무런 준비도 안하고 시험을 봤는데 그렇게 된 거죠. 그걸 보고 저는 ‘왔다! 이 길이다! 이거다!’(웃음)하는 확신이 있었고 그런 결과물을 가지고 부모님을 설득했죠.”

강제(?)로 시작하게 된 스포츠 아나운서
오랜 설득 끝에 부모님의 허락은 받아냈지만 김선신에게도 새로운 도전에 대한 고민은 존재했다. 그러나 아나운서라는 직업에 대한 갈망은 그런 것들을 모두 이겨내고도 남을 정도였다고. 결국 김선신은 본격적으로 아나운서 준비를 시작한지 4개월 만에 MBC스포츠플러스에 프리랜서로 채용이 되었다. 

“저도 사실 내적으로는 고민과 갈등을 많이 했거든요. 지금은 웃으면서 이 직업이 적성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사실 그때 당시에는 제 스스로도 의문이 많았어요. ‘이렇게까지 했는데 이 길이 아니면 어떡하지’ 하는 고민이 많았는데 그런 것들을 넘어서는 아나운서에 대한 갈망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정말 아카데미를 듣는 1시간이 저한테는 너무 소중하고 기쁘더라고요. 마치 대학교에서 정말 듣고 싶었던 강의를 수강신청해서 듣는 기분이랄까요?”

듣고 싶었던 강의? 학교에 그런 게 있단 말인가? 대학 시절 듣고 싶었던 강의보다 들어야 하는 강의만 가득했던 필자는 도저히 공감할 수 없는 기분이었지만 뭐 어쨌든 즐거웠다는 의미인 것 같다. 

교사를 그만두고 4개월 만에 아나운서에 합격한 비결은 그런 부분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가 원래 스포츠 아나운서 쪽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는 점이다. 

“제가 아나운서 준비를 할 때만 하더라도 스포츠 아나운서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어요. 그냥 저에게 아나운서는 9시 뉴스를 진행하거나 교양 프로그램 진행, 현장에 나가는 아나운서 정도였는데 아카데미에서 선생님들이 ‘너는 절대로 9시 뉴스는 안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스튜디오에 앉아만 있는 성격이 절대 못 된다는 것을 아셨던 거죠.”

김선신에 대해 완벽 파악(?)한 아카데미 선생님들이 추천한 것이 바로 스포츠 아나운서. 김선신의 평소 방송 스타일을 생각해보면 이러한 선생님들의 판단은 100% 정확했다. 역시 선생님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다.

“제가 그때 인터넷으로 찾아보니까 스포츠 아나운서들은 키도 크시고 육감적인 몸매를 자랑하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끝까지 안한다고 했는데 저희 아카데미 실장님이 저 몰래 지원서를 넣어버리셨어요. 저의 의지는 아니었던 거죠(웃음).” 

이렇듯 그를 완벽히 파악한 아카데미 선생님에 의해 김선신은 스포츠 아나운서 준비를 반강제(?)로 시작하게 되었다. 문제는 그가 평소 스포츠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것. 특히 야구장에는 주로 치킨을 먹을 목적(?)으로 간 기억밖에 없었다. 그런 그는 어렵기로 소문난 야구를 어떻게 공부했을까? 

“저는 준비를 할 때 제 나름대로 전략을 세워서 준비했죠. 스터디를 하는 사람 중에 정말 야구를 잘 아는 오빠가 있었거든요. 그 오빠한테 야구 과외 좀 시켜달라고 부탁을 한 거죠. 그렇게 계속 따라다니면서 모르는 것이 있으면 물어봤어요. 그 오빠도 짜증 한 번 안내고 영상까지 찾아가면서 친절하게 가르쳐 주더라고요. 저도 고마워서 밥도 사고 선물도 주고 하면서 배웠어요.”

추측하건데 그 오빠에게는 밥과 선물이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 김선신 정도의 동생이 따라다니면서 이것저것 물어보는데 친절하지 않을 오빠는 지구상에 없다. 그는 예쁜 여자에게 이용당한 순정파 비련의 주인공일수도 있다! 뭐, 그 오빠 역시 지금은 캐스터로 일을 하고 있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이어 김선신은 “내가 9시 뉴스를 안 해봐서 그렇지 아카데미에서 발성이 좋기로 진짜 유명했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러나 의심 많은 필자와 편집장. 곧바로 인터넷에서 뉴스 대본을 급조해 검증 작업에 돌입했다. 조그만 실수라도 하면 실컷 놀리려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던 그 순간, 김선신은 사진 스튜디오를 뉴스 스튜디오로 만들었다.(영상 참조) 그래, 그냥 조용히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자. 

루키 더 바스켓(이하 ‘RB’): 아나운서 되고 처음으로 맡았던 일이 어떤 거였어요?
김선신: 저희 사장님이 그때 개를 굉장히 좋아하셨어요. 현장에 나가는 방송은 배구가 처음이었는데 가장 처음으로 했던 방송은 도그쇼 중계였거든요. 음.. '개쇼'죠! 하하! 개들이 막 왔다갔다 거리는데 그걸 하나하나 설명해줘야 해요. 근데 그게 미국에서 인기가 진짜 많아요.”  

스포츠 아나운서와 도그쇼라니. 역시 커리어의 시작부터 심상치 않다. 당시 김선신이 맡았던 대회는 ‘웨스트민스터 도그쇼’. 난생 처음 들어보는 대회라 인터넷의 힘을 잠깐 빌렸더니 무려 14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권위 있는 대회라고 한다. 중계권료도 만만치 않다고. 어쨌든 이 도그쇼 중계와 함께 김선신은 본격적으로 아나운서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했다.  

②편에서 계속...    
사진=박진호 기자 ck17@thebasket.kr, 이현수 기자 stephen_hs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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